기준금리 1.75% 시대. 금리의 역습이 시작됐다.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인 0.50%였다. 불과 9개월 만에 1.25%포인트 급상승한 것이다. 한국은행은 14년 9개월 만에 두 달 연속 금리를 올렸다. 한번 불붙은 금리인상 기조는 좀처럼 꺾일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물가상승률 5%대가 현실화했고 미국도 통화 긴축에 속도를 내는 상황이다. 금융권은 고금리 시대에 발맞추고 있다. 수신금리를 올리고 초장기대출 상품도 내놨지만 대출이자 부담은 국내 경제 뇌관이 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8%를 목전에 뒀다. 금리는 언제까지 고공행진할까. 고금리 시대 돈은 어떻게 빌려야 할까. 더팩트가 짚어본다. <편집자주>
[더팩트│황원영 기자] 금융권이 너도나도 수십 년짜리 주택담보대출(주담대)를 내놓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모두 40년만기 주담대를 내놨고 삼성생명·삼성화재 등 주요 보험사도 동참했다. 한화생명은 이달 중순 해당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고 교보생명도 곧 합류한다. 현재 교보생명은 만 39세 미만 및 혼인 7년 이내 신혼가구에만 40년 만기 주담대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3분기 내로 주요 보험사가 관련 상품을 취급할 전망이다. 농협·신협·수협 등 상호금융도 조만간 40년 만기 주담대를 출시한다. 상호금융 주담대 만기는 현재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에 따라 30년으로 제안돼 있어 개정이 필요하다. 이들 상호금융은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개정을 금융당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은 초장기 주담대 상품 출시를 두고 금융 소비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입을 모은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대출금리도 오르면서 대출자의 원리금 상환 부담도 커졌다. 여기에 정부 대출 규제로 가계대출이 감소하자 금융권이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만기를 연장하면 빌릴 수 있는 금액이 커지고 매달 갚는 원리금은 줄어든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따라 총원리금상환액을 차주의 일정 소득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만기가 길어지면 연간 원리금 상환 부담이 줄어 대출 한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가령 다른 채무가 없는 연소득 5000만 원 직장인이 은행에서 주담대(연 5.0%)를 원리금균등분할 방식으로 빌린다고 가정하면 DSR 40% 규제에 따라 만기 30년 상품의 경우 최대 3억1050만 원까지 빌릴 수 있다. 만기를 40년으로 늘리면 3억4565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해 한도가 3515만 원 늘어난다.
하지만 부담해야 하는 이자가 늘어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대출 만기가 길어지면 대출금액과 기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제 위 직장인이 3억 원을 빌릴 경우 30년 만기시 총대출이자는 2억7976만 원이지만 40년 만기 때에는 3억9435만 원으로 1억1459만 원 늘어난다.
다만, 40년 만기로 주담대를 받아 실제 만기까지 대출을 안고 가는 사람이 적어 총이자부담액은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대부분 몇 년간 이자를 갚다가 이사하거나 주택을 처분하면서 기존 대출을 일시상환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중도상환수수료도 고려해야 한다. 중도상환수수료는 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차주가 만기 전 대출금을 갚을 때 내는 수수료다. 보통 주담대는 대출일로부터 3년 내 갚으면 대출 잔액의 1%를 중도수수료로 부과한다.
시중은행과 2금융권 주담대도 비교할 필요가 있다. 우선 DSR 규제 범위가 다르다. 은행권은 40% 2금융권은 50%로 각각 적용돼 대출 가능한 금액이 달라진다. 앞서 언급한 연소득 5000만 원 직장인이 같은 이율(5.0%)로 은행과 보험사에서 40년 만기 주담대를 실행할 경우 대출한도는 각각 3억4565만 원, 4억3205만 원으로 보험사가 8640만 원 높다. 보험사 등 2금융권에서 대출받을 경우 한도를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금리 적용 시점에도 차이가 있다. 통상 은행은 대출 발생시점에 금리를 적용하고 보험사는 접수시점 금리를 적용한다. 금리 인상기에는 한두 달 차이로 이자가 크게 늘어날 수 있어 접수시점 금리가 더 매력적이다.
특히, 올해 기준금리가 2.5%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주담대 금리도 가파르게 오를 가능성이 높다. 실제 주담대 금리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 이번 주 KB국민은행이 책정한 KB주택담보대출 고정형(혼합형) 금리는 연 4.28~5.78%로 연 4.06~5.56% 수준이던 1주 전(5월 30일~6월 5일)보다 0.22%포인트 뛰었다.
지난주 고정형 주담대로 3억 원을 연 4.06% 금리(30년 만기·원리금균등상환)로 빌렸다면, 매년 원리금 1731만 원을 내야 했으나 이번 주에 같은 금액을 대출받으면 원리금이 1777만 원으로 46만 원 늘어난다. 상환기간을 고려하면 1380만 원을 더 내는 셈이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고정형 주담대 금리를 올렸다. 우리은행 우리아파트론 고정형 주담대 최고금리는 연 6.69%로 지난 3일(연 6.62%)보다 0.07%포인트 올랐다.
금융권은 초장기 대출을 통해 최근 이어지고 있는 대출 감소 추세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5대 은행의 5월말 주담대 잔액은 506조6723억 원으로 전월말대비 0.1%(5245억 원) 줄었다. 이들의 신용대출 잔액은 131조7993억 원으로 전월대비 0.5%(6613억 원) 줄었다. 신용대출은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 연속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또한, 오는 7월부터 DSR 규제가 2단계에서 3단계로 조정돼 금융권이 대출 만기를 확대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DSR규제 3단계가 시행되면 총대출액이 1억 원 이상일 때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 소득의 40%(은행 기준)를 넘을 수 없다. 현재 DSR 규제를 받는 총대출액 기준은 2억 원이다. 한도가 줄어드는 만큼 대출 잔액 감소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40년 만기 주담대 상품 출시는 기준금리가 지속적으로 인상되고 있는 시점에서 고객들의 매월 원리금 상환 부담을 덜어 드리기 위해 시행했다"며 "고객들의 관심도도 높고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에 부합하는 만큼 초장기 상품의 비중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초장기 주담대로 대출자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며 원금이 줄어든 만큼 이자가 높아진다는 걸 고려해서 각자 상황에 맞게 자금을 마련하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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