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정부가 밀가루와 돼지고깃값 등을 잡기 위해 올해까지 할당관세 0%를 적용한다고 밝힌 가운데 유통업계는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국내에 유통되는 밀가루와 수입산 돼지고기에는 이미 관세 0%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민생 안정 정책을 통해 물가를 0.1%포인트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지만 업계는 실질적인 물가 하락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한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정부는 밥상 물가 안정을 위해 돼지고기, 해바라기씨유, 밀가루 등 14대 품목을 대상으로 관세율 0%를 적용하는 할당관세를 연말까지 실시한다.
이에 따라 대두유·해바라기씨유(5→0%), 돼지고기(22.5~25→0%), 밀(1.8→0%), 밀가루(3→0%) 등은 올해까지 무관세를 적용받는다. 정부는 돼지고기의 할당관세 적용으로 최대 18.4%~20% 원가 인하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또, 밀가루의 경우 정부가 가격 상승분의 70%(546억 원)를 지원하고, 20%는 제분업계가 부담하는 대책도 내놨다.
정부는 이번 민생 안정 대책으로 물가를 0.1%포인트 낮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이미 무관세인 품목에 대한 물가 하락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대형마트들은 기본적으로 대량 구매를 하기 때문에 원래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들과 거래를 많이 해왔다"며 "그러다 보니 관세가 이미 없거나 정부에서 발표한 것보다 더 낮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관세가 낮아지면 보통 판매자들이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지만 사실 (돼지고기 등 식품 가격의) 감소 효과는 조금 기다려봐야 할 것"이라며 "정육점과 같은 소규모 돼지고기 매장에서 가격을 인하시킨다면 전체적인 돼지고기 가격은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가 수입한 제분용 밀 250만3114톤 전량은 미국과 호주·캐나다·터키·프랑스·독일산이라고 밝혔다. 이들 국가는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한 상태로, 무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돼지고기 수입 비중은 미국이 36.4%로 가장 높았으며, 스페인(20.1%), 네덜란드(8.9%), 오스트리아(7.2%), 칠레(7%), 캐나다(6.6%), 덴마크(5%) 순으로 수입하고 있다. 캐나다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FTA 협정세율은 0%다.
다만 식품업계에서는 이번 무관세 적용은 소비자 물가가 안정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며 제품 판매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원재료 가격에 대한 과세 같은 게 면제되면 원재료 가격 인하를 통해 제품 가격의 추가 인상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