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연령만을 기준으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의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 노조가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임금피크제에 관한 회사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등 곳곳에서 잡음이 새나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경영 현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 노조는 최근 임금피크제 관련, 입장을 설명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회사 측에 전달했다. 이는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사측을 압박하는 것으로, 앞서 대법원은 지난 26일 퇴직자 A 씨가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 등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해 무효라고 판단한 1, 2심을 확정하고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삭감했던 임금 차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삼성디스플레이에 이어 삼성전자 노조도 회사를 상대로 임금피크제 폐지를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4년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현재 만 57세부터 전년 대비 5%씩 임금을 삭감하고 있으며, 그동안 노조는 이러한 임금피크제를 폐지할 것을 요구해왔다.
삼성 외 다른 기업들이 임금피크제 문제를 공론화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직원 300명 이상 국내 기업 중 52%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상태다. KT의 경우 이미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19년 KT 전·현직 임직원 1300여 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 1심 선고가 다음 달 16일 내려질 예정이다.
이에 따라 기업 현장에서 임금피크제 관련 혼란과 갈등이 더욱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재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노사 간 큰 이견 없이 임금피크제를 장기간 시행하고 있던 기업에 이번 판결이 미치는 영향은 크다"며 "제도 운영에 있어 대책을 마련하겠지만, 현재로선 혼란과 갈등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임금피크제는 호봉제 등 연공서열형 임금 구조가 많은 한국과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정년을 기존 55세에서 60세로 의무화하는 고령자고용법이 시행되면서 2016년부터 민간 분야로 본격 확산되는 중이다. 일정 연령에 도달한 근로자의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임금을 조정하는 등 노사 간 합의를 통해 도입된 제도로, '상생'의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서 재계는 대법원 판결 직후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과 법의 취지를 고려하지 않은 결과로 인해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제단체 대한상공회의소는 "임금피크제는 연공급제 하에서 불가피한 조치"라며 "이를 무효화하면 청년 일자리, 중장년 고용 불안 등 정년 연장의 부작용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경제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급속한 고령화에 대응, 고용 안정을 위해 노사 간 합의 하에 도입된 임금피크제가 연령에 따른 차별로 위법하다고 판단한 판결은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고 고용 불안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나타나고 있는 노조의 임금피크제 폐지 요구안, 나아가 줄소송 가능성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재계 관계자는 "줄소송 사태가 현실화되면 경영 부담이 가중돼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 크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현장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정부가 발 빠른 대응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당분간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노조의 동의를 얻은 등의 절차적 유효성을 강조하며 문제를 유연하게 대처해나갈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지난 27일 "다른 기업에서 시행하는 임금피크제 효력은 판단 기준 충족 여부에 따라 달리 판단될 수 있다"며 "관련 판례 분석과 전문가 및 노사 의견 수렴을 거쳐 현장에 혼란이 없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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