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기업 경영 환경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데다 새 정부 출범과 코로나19 엔데믹 전환 등이 맞물리면서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재계의 움직임이 더욱더 분주해지고 있다. 주요 기업들마다 앞다퉈 대규모 투자를 예고하고, 총수들은 현장 경영을 재개하고 있다. 대응력 제고에 팔을 걷어붙인 재계의 핵심 키워드는 '미래 먹거리'다. 추후 먹거리가 될 사업을 조기에 육성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선제적으로 준비하겠다는 전략이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SK·현대차·LG·롯데 등 5대 그룹을 포함한 주요 기업들이 향후 5년간의 투자 계획을 세워 발표를 마쳤다. 주요 기업의 투자 금액은 1000조 원을 넘어섰으며, 이는 우리나라 한 해 예산(607조 원)보다 400조 원 많은 수준이다. 기업들은 투자와 함께 채용 계획도 발표했다. 기업들이 밝힌 신규 채용 규모는 28만7000명으로 집계됐다.
기업들이 줄줄이 이례적 투자·채용 계획을 발표한 것을 놓고 새 정부 출범과 연결하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화답인 동시에, 윤석열 정부의 '민간 주도 경제 성장' 기조에 발을 맞추기 위한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대규모 투자·채용 계획을 발표하면서 "투자를 통해 민간 주도 경제 성장을 지원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근본적 이유는 따로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래를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기업 내부 요인에 따른 결정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금융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대한 경쟁력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기업들은 내부적으로 성장 동력을 찾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기업들은 투자 금액 대부분을 '미래 먹거리'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삼성의 경우 '역동적 혁신 성장을 위한 삼성의 미래 준비'라는 타이틀로 450조 원의 투자를 발표했고, 4차 산업 혁명의 기반 기술인 반도체와 바이오, 인공지능(AI)·6G 등 핵심 사업 중심으로 투자 금액 대부분을 배정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번 투자의 의미에 대해 "목숨 걸고 하는 것이다. 앞만 보고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SK도 마찬가지다. 배터리(Battery), 바이오(Bio), 반도체(Chip) 등 이른바 BBC 산업으로 압축되는 핵심 성장 동력에 247조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전동화와 친환경 기술 선점을 외친 현대차(63조 원), 신사업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LG(106조 원), 헬스 앤 웰니스·모빌리티·지속 가능성 부문에 방점을 찍은 롯데(37조 원) 등도 모두 '미래 먹거리'에 초점을 맞췄다. 포스코(53조 원)도 그린 철강, 친환경 미래 소재 등을 투자 영역으로 제시했다. 또한, 한화(37조6000억 원)와 GS(21조 원), 현대중공업(21조 원), 신세계(20조 원) 모두 신사업에 집중 투자한다고 밝혔다.
기업들의 '미래 먹거리' 육성을 향한 절실함은 최근 활발해지고 있는 최고경영자(CEO)들의 현장 행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주요 기업들은 코로나19 엔데믹 상황으로 전환됨에 따라 하나둘 현장 경영을 재개하는 중이다. 구자은 LS그룹 회장은 약 3개월에 걸친 현장 경영을 계획하며 미래 먹거리 챙기기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SK그룹 내 화학·에너지 계열사 경영진과 SK이노베이션 이사진은 지난 25일 주유소 미래 현장으로 주목받는 SK박미주유소를 찾아 그룹의 미래 핵심 과제인 넷제로 전략을 점검했다.
앞서 최태원 회장도 지난달 SK박미주유소를 방문해 주유소 기반 혁신 사업 모델을 살폈다. 또 미래 사업 핵심인 수소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SK인천석유화학단지를 찾았고, 바이오 사업을 책임지는 SK바이오사이언스를 찾아 윤석열 대통령에게 연구개발 과정을 소개하기도 했다. 5대 그룹 총수 중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전동화 전환과 미래차 준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활동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재계는 조만간 기업 총수들의 현장 경영이 본격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래 먹거리' 육성 전략과 관련한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선 총수들의 역할이 중요한 데다, 대규모 투자를 발표한 만큼 이에 대한 총수 차원의 철저한 점검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미 기업들은 올해를 '미래 기업'으로 전환하는 원년으로 삼았다"며 "앞으로 주요 경영진이 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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