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삼성그룹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이 윤석열 정부의 '민간 주도 경제 성장'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대규모 투자 보따리를 푼 가운데, 기업들의 경제 활성화 노력에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주요 기업인이 사법 리스크에 발이 묶여 경영 보폭을 넓히지 못하는 현실과 관련해 투자의 실행력을 높이려면 기업인들을 사면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이에 주요 경제단체장인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석가탄신일 당시 불발됐던 기업인 사면을 새 정부에 재차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현대차)그룹, 롯데그룹, 한화그룹은 전날(24일) 일제히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규모는 600조 원에 가까운 역대급 수준이다. 주요 기업의 미국 투자 발표 이틀 만에 이뤄진 이번 추가 투자 발표는 국내 경제 활성화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투자는 대부분 신사업 영역에 집중돼 있다.
구체적으로 삼성그룹은 반도체·바이오·신성장 IT 등 미래 신사업을 중심으로 올해부터 5년 동안 450조 원을 투자한다. 이는 삼성이 지난 5년 동안 투자한 330조 원 대비 120조 원(30% 이상) 늘어난 수치다. 450조 원 가운데, 80%(360조 원)는 국내 투자다. 현대차그룹은 전동화·로보틱스를 포함한 친환경·신사업 분야 등에 2025년까지 63조 원, 롯데그룹은 헬스·모빌리티 등 신성장 부문에 5년 동안 37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한화그룹은 2026년까지 에너지, 탄소중립, 방산·우주항공 등 분야에 37조6000억 원(국내 20조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투자와 함께 고용 계획도 발표했다. 삼성그룹은 8만 명, 한화그룹은 2만 명을 신규 채용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과 롯데그룹도 고용 유발 효과가 높은 대규모 개발과 산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지원 등을 통해 고용 창출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삼중고에 시달리는 데다 우크라이나 사태, 글로벌 공급망 문제, 원자재 가격 급등, 중국의 코로나 봉쇄 등 대외 악재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고용 결정은 단비와도 같은 반가운 소식으로 평가된다. 기업들은 투자·고용 결정을 통해 글로벌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미래 신사업 경쟁력 강화 및 사회와의 동반 성장 등 '혁신 성장'을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이번 기업들의 투자·고용 결정은 '친기업'을 앞세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기업 활동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데 대한 화답 차원으로도 해석된다. 특히 국정 철학인 '민간 주도 경제 성장'을 적극 실천하겠다는 뜻으로 읽히고 있다. 실제로 일부 대기업은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투자를 통해 민간 주도 경제 성장을 지원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 주도 성장' 흐름에 발맞춰 삼성·현대차·롯데·한화 외 SK그룹과 LG그룹 등 다른 기업들도 조만간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는 앞으로 '기업의 역할'도 재정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날(24일) 대한상공회의소 최태원 회장 주도로 '신기업가 정신' 선포식을 개최했다. 이는 투자와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가치 제고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인구절벽 등 사회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서는 등 기업의 역할을 사회적 가치 증진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으로, 삼성·SK·현대차·LG·롯데 등 대부분의 기업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 최태원 회장은 "국민들은 기업에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변화, 저출산, 사회 양극화 등 사회문제 해결에 기업이 동참해야 한다"며 "노력한다면, 기업들이 국민의 박수를 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재계에서는 기업들의 화답에 다시 정부가 지원책을 마련하며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기업들의 투자와 역할 확대가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대표적인 게 규제 완화다. 재계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규제 개혁 등을 요구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기업의 경영 활동을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해나가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 살리기에 나선 기업들을 위해 정부가 민간 성장의 활력을 높여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특히 재계의 핵심 요구사항 중 하나인 '기업인 사면'과 관련해 정부가 어떠한 움직임을 나타낼지 관심이 쏠린다. 지난달 문재인 정부를 향해 경제5단체가 요청한 '경제 발전과 국민 통합을 위한 특별사면복권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근 이재용 부회장 등 기업인들이 한미 정상회담 일정 중 민간 외교관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낸 데다 이번 대규모 투자·고용 발표까지 이어지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사면복권을 빠르게 추진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손경식 경총 회장은 기업인 사면을 재차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경식 회장은 '신기업가 정신' 선포식을 마친 후 <더팩트> 취재진에 "정부에 기업인 사면 청원서를 다시 전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그 시기는 제헌절이나 광복절쯤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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