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사장급 경영인들을 긴급 소집해 회의를 개최하며 경영 전략 재점검에 나서는 등 경영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한 새 판 짜기가 한창이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은 이달 말 구광모 회장이 직접 주재하는 '상반기 전략보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당초 LG그룹은 전 계열사 대상으로 상·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사업보고회를 실시해왔지만, 코로나19 확산이 있었던 지난 2년간 하반기 한 차례만 사업보고회를 열었다. 상반기 전략 회의를 연 건 3년 만으로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화학 등 주력 계열사만 참여한다.
구광모 회장이 직접 주재하는 전략 회의를 재개한 건 경영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 전략을 재정비할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해서다. 특히 올해는 각국의 금리인상 움직임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상하이 봉쇄에 따른 공급망 붕괴, 원자재 가격 급등 등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심화돼 대응책 마련에 나서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삼성과 SK, 현대차 등도 리스크 관리 조직을 꾸리는 등 내부적으로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상황을 잘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직원들에게 경영 환경 변화와 우리 사업에 미칠 영향 등을 적극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LG그룹과 같이 최고경영자 단계에서 구체적인 움직임에 나선 기업도 있다. 먼저 한화그룹의 유화·에너지 사업 부문(한화솔루션 케미칼·첨단소재·큐셀, 한화에너지, 한화임팩트, 한화토탈에너지스 등)이 지난 4일 사장단 회의를 열고 글로벌 경제 위기에 따른 경영 현안을 긴급 점검하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한화그룹은 1분기 매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이 오히려 하락해 이번 사장단 회의가 평소 정례회의와 달리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전했다.
회의에 참여한 경영인들은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음에도 향후 매출 감소와 같은 직접적인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 공급망 및 물류 대란, 금리 상승 등 위기 요인에 대해선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계열사들은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위기 대응 프로세스를 가동, 공급망 교란으로 인한 생산 차질 최소화를 위해 안전재고 물량을 확대하고, 지정학적 리스크 영향을 줄이기 위해 공급선 다변화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환리스크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선제적 자금조달 방안 수립 등으로 현금 흐름 개선에 집중할 예정이다.
유화·에너지 부문 외 한화의 기계·항공·방산과 금융, 건설·서비스 등 다른 사업 부문은 지난달 말 긴급 회의를 열고 이미 경영 전략 재검토를 마쳤다.
최근 현대중공업그룹도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사장단 회의를 열었다. 조선해양·에너지·건설기계·일렉트릭 등 그룹 주요 계열사의 사장단이 모두 소집됐으며, 이 회의를 통해 경영 계획 추진 현황이 검토됐고, 불확실성 대응 차원의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됐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이자 현대가(家) 3세인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한국조선해양 사장도 참석해 대응책 마련에 힘을 보탰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국제 정세와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 변화 등 대내외적인 환경이 회사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조선 사업은 원자재 가격 급등, 에너지 사업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유가 불안정세 지속, 건설기계 사업은 상하이 봉쇄 조치에 따른 중국 내수 시장 위축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며 외부 영향 최소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회의를 주재한 권오갑 회장은 "이번 위기는 그동안 우리가 겪었던 위기와 차원이 다르다"며 "'워스트 시나리오'까지 고려해 대응책을 마련하는 등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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