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선영 인턴기자] 건설 회사부터 모피 회사까지 다양한 기업들이 해외 수제 버거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오고 있다. 수제 버거가 기존 정크푸드(Junk food)라는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고급스러운 버거를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또 미국식 버거를 국내에서도 즐길 수 있다는 대리만족 심리까지 더해지고 있다. 국내 수제 버거 시장은 지속해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들어 미국 수제 버거 브랜드가 대거 국내에 상륙하고 있다. 먼저 건설사 대우산업개발의 자회사 이안GT(iaan GT)는 지난 1일부터 '오바마 버거'로 유명세를 탄 미국 수제 버거 전문점 '굿 스터프 이터리(Good Stuff Eatery·GSE)'의 서울 강남점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GSE 강남점은 스마트 팜을 활용한 인테리어로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안GT는 스타 셰프 스파이크 멘델슨의 레시피를 적용하고 매장 내 스마트 팜인 'GT팜'을 도입해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를 뒀다. GT팜에서는 버터헤드, 라리크, 코스테우, 로메인, 잔드라, 파프리카, 방울토마토 등 매장에서 판매하는 버거와 샐러드용 채소를 직접 재배해 사용한다. 수경재배 방식으로 매장 내 재배가 불가능한 양파와 토마토는 경기도 이천 등 인근 도시에서 가져온다.
매장의 대표 메뉴는 '프레지던트 오바마 버거'와 '팜하우스 버거'다. 단품 기준 가격은 각각 1만3900원, 1만1900원이다. 버거 단품 가격의 최고가는 1만3900원으로 6000원인 바닐라 쉐이크 등의 메뉴를 곁들이면 2만 원 미만으로 구매할 수 있다.
매장 관계자는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유정란만 사용하며 패티 또한 콜드체인 유통 과정으로 들여온 얼리지 않은 스테이크용 알목심을 이용한다"며 "햄버거빵(번)의 경우 달콤한 맛이 특징이고 미국 본사에서 납품받는다"고 말했다.
GSE가 강조하는 국내 햄버거 시장 공략 포인트는 '고급화'와 '친환경'이다. 이날 매장을 찾은 고객들은 "수제 버거는 고급스러운 느낌이 매력"이라며 "비싸지만 맛있어서 찾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지난 1월에는 모피 전문업체인 진경산업이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영국의 스타셰프인 고든램지의 '고든램지버거' 매장을 열었으며 입점과 동시에 '오픈런'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고든램지버거는 리얼 트러플, 방사유정란 등 파인 다이닝(고급 식당) 수준의 식자재를 사용하고, 소스를 직접 제조한다. 대표 메뉴는 '헬스키친 버거'로 가격은 3만1000원이다. 버거 단품은 2만7000원부터이며 최고가는 14만 원인 '1966버거'로, 다양한 가격대의 메뉴를 제공해 소비자들이 제품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업계에 따르면 고든램지버거의 지난 3월 매출은 10억 원을 돌파했다. 고든램지코리아 관계자는 "지난 3월엔 10억 원, 지난달엔 11억 원어치를 팔았다"며 "롯데월드몰 입점 매장 중 매출 1위"라고 밝혔다. 고든램지코리아는 국내 2호점과 3호점을 열 계획이며 2호점과 3호점은 하이엔드 레스토랑 콘셉트의 1호점과 다른 '캐주얼 콘셉트'일 것이라고 했다. 1만 원대 수제 버거들이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가격의 캐주얼화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와 같은 수제 버거 열풍에 bhc그룹과 한화솔루션 갤러리아 부문 등도 이 시장에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bhc그룹은 오는 6월 서울 강남역 인근에 미국 서부의 대표 햄버거 브랜드 '슈퍼두퍼'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다. 슈퍼두퍼는 '인앤아웃', '쉐이크쉑' 등의 유명 브랜드와 함께 미국 서부지역 대표 버거로 알려져 있으며 냉동육을 사용하지 않고 냉장육을 양념해 구운 신선한 패티를 특징으로 한다.
한화솔루션 갤러리아 부문은 미국 3대 버거로 꼽히는 '파이브 가이즈 버거 앤 프라이즈'의 입점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양어업 전문 기업인 신라교역의 자회사 NLC도 한국에서 철수했던 미국 햄버거 업체 파파이스를 오는 9월 다시 국내에 선보인다. 업계에서는 수제 버거 시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파리바게뜨, 삼립식품 등 식품전문업체인 SPC그룹은 2016년부터 미국의 3대 프리미엄 버거 브랜드로 알려진 쉐이크쉑(Shake Shack)을 한국에 상륙시키며 수제 버거의 '프랜차이즈화'를 선도했다. 2016년 7월에 오픈한 쉐이크쉑 1호점은 전 세계 쉐이크쉑 매장 중 매출 1위를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로 한국에서 인기를 얻었다. SPC그룹은 현재 20개가 넘는 쉐이크쉑 매장을 국내에서 운영 중이다.
쉐이크쉑은 현재 한국에서 전 세계 유일하게 글로벌 본사 승인을 받아 자체 생산한 번을 사용 중이다. 각 매장에는 그 지역을 상징하는 아트워크를 배치했으며 당일 매장에서 직접 제조한 커스터드로 만든 다양한 쉐이크와 디저트를 제공한다는 차별점이 있다.
쉐이크쉑의 '쉑버거'의 단품 기준 가격은 7300원, 최고가인 '쉑 스택'의 단품 기준 가격은 1만3100원이다. 쉑버거 단품과 6200원인 쉐이크를 추가한 가격은 1만3500원 정도다. 또, 쉐이크쉑은 이번 달 신제품 출시에 나섰다. 자체 개발한 홀스래디시 페퍼콘 마요 소스를 올린 '홀스래디시 페퍼콘 버거'를 1만1900원의 가격으로 출시한다.
SPC 그룹은 색다른 외식 경험을 창출하는 '파인 캐주얼'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파인 캐주얼은 최고급 레스토랑의 품질과 서비스에 '패스트 캐주얼(Fast-casual)'의 합리적인 가격과 편리함을 적용한 외식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다. 까다로운 식재료와 레시피를 통한 엄격한 품질 관리, 품격 있는 고객 서비스 등을 중점으로 둔다.
SPC는 지난달 29일에는 기존 'SPC스퀘어'가 새롭게 단장한 복합외식문화공간인 '스퀘어강남'에 강남 2호점이자 21번째 매장을 오픈했고, 이달 강북 수유에 22번째 매장을 연다.
경제 전문가는 이같은 수제 버거 소비 현상에 대해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으로 불리는 초대형 경제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소비에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 등 해외에서 온 버거는 그 자체에서 본 고장이 주는 일명 원산지 효과가 있다"며 "(수제 버거가) 소비 주력 세대인 MZ세대를 포함한 소비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들은 '퍼펙트 스톰'으로 불리는 초대형 경제 위기가 몰려오고 있다는 장기 불황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며 "예를 들어 해외여행을 못 가니까 5만 원짜리 명품 립스틱이라도 사야겠다는 생각처럼 미국에 갈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미국 현지에서 맛볼 수 있는 버거를 먹으며 대리만족을 하는 심리"라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미국 버거가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대체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수제 버거 시장은 지속해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