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근의 Biz이코노미] 아쉬울 때만 "삼성"...文 정부와 '이재용 사면'


경제계 이재용 사면복권 요청 목소리, '생떼'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을 요구하는 경제계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는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 /이새롬 기자

[더팩트 | 서재근 기자]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국내 대표 경제 5단체가 정부를 향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복권을 청원했다.

코로나19와 미·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등 예단할 수 없는 대외 불확실성,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역량 있는 기업인의 역할 등이 이들 단체가 내세운 사면 이유다.

지난해 8월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이 확정됐을 때도 경제계 안팎에서는 경영 활동에 제약이 있는 '반쪽 복귀'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가석방은 '형 면제'가 아닌 형기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형기 내 재범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임시로 풀어주는 행정 처분이다. 이 부회장의 형기는 오는 7월 18일 종료되지만, 그때까지 국내외 모든 동선에 제한이 따른다. 더욱이 형기가 끝나도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년간 취업제한을 받아 경영 참여도 불가능하다.

현 정부가 밟아온 길을 되돌아보면, 경제계의 이 같은 호소가 결코 생떼로 들리진 않는다. 임기 종료를 코앞에 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5년은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의 '잃어버린 5년'과 그대로 맞물린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을 한 달 앞두고 국정농단 1심 첫 재판(2017년 4월 7일)을 치른 이재용 부회장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등 별건으로 매주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이 기간 이 부회장이 법정에 출석한 횟수는 가석방 기간을 제외하고도 80회를 넘어선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긴 법정공방은 형법상 어디에도 명시되지 않은 '묵시적(默示的) 청탁'이라는 단어가 등장, 재판 초기부터 줄곧 개운치 않은 뒷맛과 각계의 분분한 해석이 이어지며 분열과 갈등을 야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정부의 청년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 청년희망 온(ON) 참여 기업 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 당시 이재용 부회장에게 대규모 일자리 창출을 주문했다. /뉴시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그간 행보에서도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자녀 입시 비리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했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임명 배경과 관련해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적인 증거 없이 스스로 '(박근혜) 정부에 경제적 지원 안 하면 피해가 있고, 지원을 해야만 승계 작업 도와주겠지'라는 묵시적인 인지를 했을 것이란 법원의 판단으로 수년째 경영 활동에 발이 묶인 것과 비교하면 참으로 관대한 설명이다.

어디 그뿐인가. 상고심까지 끝난 상황에서 법리적 해석은 차치하더라도 문재인 정부가 경제 정책 홍보용으로 삼성을 전면에 내세운 것만 수차례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0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을 방문한 데 이어 지난해 5월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시설을 찾아 정부 차원의 지원을 공언했다. 같은 해 말에는 정부의 청년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 '청년희망 온(ON)' 관련 대규모 일자리 창출을 주문했다. 물론 업계에서 공감하는 규제 개혁이나 산학 협력 지원은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필요할 때는 "삼성"을 외치면서 경제계가 요청할 때는 고개를 돌리는 식의 행태는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법원이 '강요로 뇌물을 받았다'고 판단한 사람을 사면했다면, '뇌물을 공여했다'고 본 사람을 사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경제단체의 호소에 짙게 묻어난 대로 삼성이라는 특정 대기업을 넘어 국가 경제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최고의사결정권자가 경영활동에 발목이 잡혀있는 상황에서 일자리 창출과 직결되는 대규모 인수합병(M&A)이나 신규투자가 제대로 이뤄질 리 만무하다. 국민 10명 중 1명꼴인 500만 삼성전자 주주가 연중 최저가를 치닫는 주가를 보며 속을 끓이는 근본 원인도 대외 활동에 제약을 받는 이재용 부회장 상황과 무관치 않다.

대만의 반도체 기업 TSMC가 애플을 비롯한 글로벌 대형 고객사 파운드리 수주를 쓸어 담고, 미국의 인텔도 자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삼성의 숨통을 바싹 죄고 있다. 경제계의 절박한 외침은 결코 엄살이 아니다. 부디 현 정부가 이번 '석가탄신일 특별사면'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의 손발에 묶어 놓은 줄을 직접 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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