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민주 기자]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으로 불리는 둔촌주공 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전면 중단됐다. 외상공사를 견디지 못한 시공사업단이 현장에서 손을 떼는 강수를 뒀지만, 조합에서는 "시공사를 교체하겠다"며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내 집 마련의 꿈'에 부풀었던 청약 대기자들의 불안도 덩달아 커지는 분위기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둔촌주공 분양 일정 연기로 올해 서울 주택공급 물량의 4분의 1이 사라질 위기에 직면했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 아파트를 '둔촌 올림픽파크 에비뉴프레'로 탈바꿈하는 사업이다. 규모는 1만2032가구며, 일반분양 물량만 4786가구에 달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의 신규 아파트 분양예정 물량은 4만9341가구로 추산된다. 규모로만 따졌을 때 둔촌주공이 차지하는 비중은 24% 수준이다.
당초 부동산 업계에서는 올해 상반기 중 둔촌주공 일반분양을 진행하고 내년 하반기 입주할 것으로 예상했다. 둔촌주공은 당초 내년 8월 완공 예정이었으나 지난달 기준 공사 기간은 9개월 연장됐으며, 현재는 무기한 중단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동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명 '둔촌주공 대기자'들의 토로가 쏟아지고 있다. 한 누리꾼(hsks***)은 "강동구 기준 분양가로 송파구 인근 대단지를 분양받을 수 있는 기회다. 주위에 둔촌주공(청약)을 기다린 사람만 몇인지 모른다. 전부 허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누리꾼(ysoo**)은 "싼 금액에 좋은 자리 집 하나 잡으려고 일반분양을 노리던 사람들은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됐다"며 "분양이 언제, 얼마에 나올지 모르는 깜깜이가 됐으니 주변에서 거주하며 완공을 기다리다 날벼락을 맞은 셈"이라고 전했다.
이외에도 "현금이 부족한 (청약) 고가점자들 중에 둔촌주공을 노리는 사람이 많았다. 분양이 밀리면서 아쉬운 상황이 됐다"(fres***), "최대 피해자는 최근에 입주권을 구매한 사람들"(harr***) 등의 반응이 나온다.
조합원들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내년 8월 입주를 기다리고 있던 둔촌주공 조합원 수는 6000여 명에 이른다. 입주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전·월세살이 기간도 길어지게 됐으며, 이주비상환이나 이자납부 등의 자금 문제도 뒤따를 전망이다.
시공사업단에 따르면 조합원들은 지난 2월부터 이주비 대출 이자를 직접 납부하고 있다. 이주비 대출이자는 그간 시공사업단이 지불하던 것으로 규모는 1조2800억 원, 만기는 오는 7월이다. 공사가 중단되면 이주비 대출 연장이 어려울 수 있고, 연장하더라도 위험이자 등으로 금리가 높아져 더 많은 이자를 내야 한다.
한 조합원(miso***)은 둔촌주공 조합원 카페에 "이미 공기가 9개월 늦어진 상태에서 공사중단 이후 공사재개까지는 통상 최소 6개월이 소요된다면 예정된 입주시한보다 1년 6개월 이상 입주가 늦어질 것"이라며 "공사가 한 달 늦어지면 조합원이 입는 전체 피해는 약 1500억 원이다. 사업비 및 그 이자증가 이주비 이자, 전세·월세사는 조합원의 주거비를 합치면 그 이상일 것"이라고 호소했다.
무고한 피해자가 늘어가는 가운데 여전히 갈등 해결까지는 갈 길이 먼 분위기다.
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의 둔촌주공 시공사업단은 지난 15일을 기점으로 공사를 중단했다. 조합은 다음 날인 지난 16일 둔촌동 동북중·고에서 총회를 열고 '과거 공사비 증액 계약과 관련한 조합 임시총회 의결을 취소하는 안'을 가결했다. 참석인원 4822명(서면 결의 포함) 가운데 4558명이 찬성(94.5%)했다.
이번 총회를 통해 조합은 시공사업단과의 최초 갈등의 원인이 된 공사비 증액 계약에 대한 명백한 반대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양측은 지난 2016년 총회에서 2조6000억 원의 공사비를 의결하고, 지난 2020년 6월 약 5600억 원 증액한 3조2000억 원대로 계약을 변경했다. 현 조합은 증액 계약 체결 직후 조합장이 해임됐다는 점을 근거로 증액 계약서가 적법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시공사업단은 증액 계약이 조합 총회 의결을 거쳤고 관할 구청의 인가까지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둔촌주공 재건축조합은 지난달 22일 시공건설사를 상대로 공사계약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들은 서울동부지법에 5600억 원 규모의 공사비 증액 변경 계약을 무효로 돌려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냈다.
업계 관계자는 "시공사업단도 쉽게 공사를 중단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한 외상 공사비만 천문학적이고 공사를 할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적절한 수준의 보상을 받기 전까지는 절대 공사를 재개하지 않을 것이다. 극적인 화해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조합원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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