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사측과 임금 갈등을 빚고 있는 삼성전자 노동조합(노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자택 앞 집회라는 강수를 던졌다.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 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요구사항에 대한 '결단'을 원하는 노조 측은 본격적인 투쟁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노조 공동교섭단은 13일 오전 10시 이재용 부회장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 앞에서 임금 관련 집회를 진행한다. '급여 체계 개선'과 '휴식권 보장' 등 요구안에 대해 답변을 듣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요구안은 △성과급 현재 기준을 경제적부가가치(EVA)에서 영업이익으로 변경 △포괄임금제와 임금피크제 폐지 △유급휴가 5일 △회사 창립일·노조창립일 1일 유급화 등이다.
앞서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해부터 15회에 걸쳐 임금교섭을 진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에 노조는 파업을 할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한 후 '대표이사가 직접 대화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사측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DS부문장)은 지난달 노조 대표자와 만나 각자 입장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교환했다.
이날 집회는 경계현 사장과의 만남 이후 접점 찾기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측이 지난해 임금교섭 내용을 올해 임금교섭에 병합해 논의하자고 제안했고, 노조는 이에 반발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6일까지 전국 12개 삼성전자 사업장을 순회하면서 홍보 투쟁을 진행하기도 했다.
노조 관계자는 "경계현 사장은 요구안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경계현 사장도 결정할 수 없다면,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이재용 부회장뿐"이라며 "이재용 부회장에게 답변을 요구하기 위해 한남동 자택에서 집회를 갖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노조가 대화보단 투쟁에 힘을 실으면서 노사 갈등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외적으로 파업 가능성도 지속해서 거론되고 있다. 다만 노조가 당장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측이 대화를 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업 카드'를 꺼내 들 경우 자칫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어서다. 노조가 파업을 결정한다면 삼성전자는 창사 53년 만에 첫 파업을 맞는다.
이날 진행되는 집회 역시 지속성을 가져갈지 여부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현재로선 앞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투쟁이 이뤄질지 명확히 말씀드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삼성전자 주주총회 자리에서는 노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주주들이 주주총회에서 노조를 비판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한 주주가 "삼성 노조가 귀족 노조가 되지 않아야 한다. 과도한 요구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고 말해 주주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에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DX부문장)은 "발전된 노사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내부 지지를 이끌어내는 활동을 이어나갈 전망이다. 삼성전자 노조는 조합원 수가 4500명 안팎으로 전체 직원 11만4000명의 4% 수준에 불과해 대표성 논란을 빚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려면 조합원 여러분들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 끝까지 지지 부탁한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우리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과 글로벌 위상 및 평판 등을 고려했을 때 노조 문제가 경쟁력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며 "조만간 다시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재협상에 나서길 기대해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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