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이른바 K-콘텐츠가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세계인의 환호를 이끌어 내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이 한류 콘텐츠의 대표 아이콘으로 우뚝 선 가운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등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신한류 콘텐츠가 세계 시장의 자본을 움직이고 있다. 아이돌 그룹과 영화, 그리고 드라마까지 다각화 된 한류 콘텐츠 산업은 국내는 물론 해외 주식시장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더팩트>는 세계화된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 이면의 비즈니스를 다각도로 분석하는 '엔터Biz'를 통해 집중분석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한림 기자] SM엔터테인먼트 창립자이자 최대주주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가 주주 목소리에 무릎을 꿇었다. 사상 첫 배당에 표심을 얻기 위한 주주서한까지 돌렸으나 역부족인 결과다. 주가는 결과론적인 리스크 해소 기대감에 강세를 보였다. 지적됐던 지배구조 문제를 정리할 지가 최대 관심사다.
SM엔터테인먼트는 3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서울 성수동 SM엔터테인먼트 본사 대회의실에서 제 27기 정기 주주총회(주총)를 열었다. 주총장에는 100여 명에 육박한 소액주주들이 몰려들었으며 출석 주식 수 집계에 애를 먹으면서 2시간이 지체됐다. 물흐르듯 진행됐던 과거 주총과는 시작부터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셈이다.
이번 주총의 핵심 안건인 감사 선임의 건은 회사 측과 소수주주 측인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얼라인) 측 후보의 표 대결로 관심을 끌었다. 결과는 회사 측 후보의 주총 개회 직전 자진 사퇴에 따라 소수주주 측의 승리였다. 주주제안을 지휘한 얼라인은 입장문을 내고 '이제 시작'이라는 결언을, 회사 측은 '이번을 계기로 주주가치 제고를 제대로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호사가들은 이번 SM엔터테인먼트 주총 결과를 두고 20년 간 굳건하던 SM엔터테인먼트의 회사 운영 방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얼라인이 SM엔터테인먼트에게 주주제안을 할 때 지배구조 상 이수만 프로듀서 중심의 거버넌스 문제를 골자로 지적했기 떄문이다.
이수만 프로듀서는 한국 K팝을 세계적인 문화로 만든 굴지의 가요기획사 창립자임에도 방시혁 하이브 의장,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와 달리 현재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즉 본인이 만든 SM엔터테인먼트로부터 월급을 받지 않는 것이다. 다만 최대주주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들과 동일하다.
그러나 이수만 프로듀서는 다른 의미로 SM엔터테인먼트가 벌어들인 돈을 취득하고 있다. 이수만 프로듀서의 100% 지분 회사로 사실상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을 통해 이 회사의 영업이익 전부를 통장에 넣고 있어서다. 라이크기획은 1995년 설립된 회사로 SM엔터테인먼트가 상장 한 2000년 후부터 20여 년 간 1000억 원에 달하는 인세를 벌었다.
얼라인은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파고 들었다. 이창환 얼라인 대표가 그간 여러 인터뷰를 통해 "최대주주(이수만 프로듀서)의 친척이나 고등학교 동창, 장기근속 사내 인사로 구성된 SM엔터테인먼트 이사회는 주주들의 오랜 요구에도 문제에 대해 자체 검증하거나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다"며 "감사 한 명이라도 최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사람이 돼서 최소한의 감시와 견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이번 SM엔터테인먼트의 주총 결과는 0.91%에 불과한 지분을 가지고도 주주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은 얼라인의 묘수가 통한 것과 동시에 이수만 프로듀서를 향한 주주들의 불신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그도 그럴 것이 SM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지배구조 해소 기대감'에 따라 주당 8만 원 선을 돌파하면서 향후 강보합세를 기대하게 됐다.
반면 SM엔터테인먼트는 주총 직후 곧바로 주주 친화적인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결과를 받아들이면서도 의연한 자세를 취해 눈길을 끈다. 실제로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주총 직전 회사 측 후보의 자진 사퇴 등이 모두 의도한 과정이 아니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는 최근 SM엔터테인먼트를 둘러싼 각종 이슈들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말부터 문화 엔터테인먼트 업계 '큰 손'인 CJ와 카카오 그룹의 인수설로 도마 위에 오른 바 있어서다. 인수설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주가는 상승했고 최대주주인 이수만 프로듀서의 지분 가치도 덩달아 올랐다.
물론 회사 측은 인수설에 대해 "확정된 바 없다"며 연일 못을 박고 있다. 다만 엔터테인먼트사의 미래 사업가치를 참고하는 아티스트의 영향력과 실제 판단의 기준이 되는 이들의 앨범 판매량, 결과적으로 증명된 지난해 호실적 등으로 미뤄봤을 때 매도자 우위 시장에서 매각을 염두해 두고 있는 쪽이 '꽃놀이패'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조금이나마 주가를 더 올려 지분 가치를 더 인정받는 게 주주로서는 최선의 선택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번 주총 결과는 소액주주 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관련 시장을 주목하고 있는 투자자들에게는 오랜 관심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봐도 행동주의 펀드가 회사와 붙어 승리한다는 확률 자체가 높지 않을 뿐더러 특히 보수적 색채를 띄는 한국에서는 낯선 모습이기 때문이다. SM엔터테인먼트의 향후 사업 방침이나 이수만 대표의 라이크기획에 대한 행보, 카카오 등 대형 기업 매각설 등에 초점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