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한예주 기자]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와이파이모듈, 경연성회로기판(RFPCB) 등 수익성이 낮은 비주력 사업을 줄이고 MLCC, 반도체패키지기판 등 고수익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해에 이어 이어 올해도 '연간 최대 실적'이 예상되는 가운데, 삼성전기가 '초일류 부품회사'로 나아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1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예상하는 삼성전기의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조5317억 원, 4044억 원이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6.7%, 영업이익은 22.0% 늘어난 규모다.
증권사들은 삼성전기가 올해 10조 원을 훌쩍 넘는 10조3965억 원의 매출을 거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업이익 전망치(컨센서스)는 1조6972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와 비교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7.5%, 14.1%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기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둘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기는 지난해 1973년 창사 이후 최고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MLCC와 고사양 반도체 패키지 기판의 판매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업계는 삼성전기가 고객사를 늘리면서 MLCC와 반도체 패키지 기판의 판매를 늘릴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 '꾸준한 효자' MLCC…"IT와 전장으로 시장 우위 확보"
실제 최근 삼성전기는 MLCC와 기판 두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간 삼성전기 '효자' 역할을 한 제품은 단연 MLCC였다. MLCC는 전자회로에 전류가 안정적으로 흐르도록 제어하는 소형 부품이다. 반도체에 전기를 일정하게 공급하는 '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가전제품, 자동차 등에 두루 쓰여 '산업의 쌀'로 불린다. 스마트폰에 평균 600~1000개, 일반 자동차에 3000개, 전기차에는 1만5000개가량이 탑재된다. 최근 5G 스마트폰, 서버용 데이터 센터, 전기차 등 고사양 MLCC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들은 올해 MLCC 업황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MLCC 주요 수요처인 스마트폰의 올해 출하량은 전년 대비 7.2% 성장한 14억9200만 대가 예상된다. 지난 2020년 13억1200만 대와 비교해 2년 만에 13.7%가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기존 스마트폰 대비 30% 더 많은 MLCC가 들어가는 5G 스마트폰 보급률이 올해 처음으로 전체 출하량의 50%를 넘어서면서 MLCC 수익성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전장용 고용량 MLCC 수요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전장용 MLCC 수요가 전년(4490억 개) 대비 25% 늘어난 5620억 개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는 전장용 MLCC 시장이 아직 본격적으로 개화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 전장용 MLCC를 공략 중인 삼성전기의 MLCC 실적이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장덕현 사장 역시 최근 열린 미디어 행사에서 "삼성전기의 주력 사업인 MLCC는 다양한 IT 부문과 차세대 자동차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부품"이라고 말했다.
삼성전기는 그간 MLCC 사업에서 쌓아 온 초격차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부가 제품 라인업을 강화하는 동시에, 기존 모바일을 넘어 자동차·네트워크 등까지 사업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 '미래 먹거리' FC-BGA…패키지솔루션 부문 실적 가시화
기판 사업에서도 FC-BGA 등 고부가 제품을 중심으로 외연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FC-BGA는 반도체 칩과 기판을 돌기처럼 동그란 형태의 '범프'로 연결한 반도체 패키지 기판이다. 반도체에 와이어로 연결하는 기존 방식과 다르게 범프를 통해 뒤집어진 채로 연결해 '플립칩'이란 용어를 쓴다. 전기와 열적 특성을 향상시킨 FC-BGA는 기판 가운데 제조가 가장 어려운 고집적 패키지 기판으로 오늘날 고사양 PC와 전기차, 데이터센터 등에 탑재되는 시스템 반도체를 만들 때 필수 부품이다.
삼성전기는 이미 몇 년 전부터 기판솔루션사업을 FC-BGA 중심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해 왔다. 2019년엔 부진했던 패널레벨패키지(PLP)사업을 모회사인 삼성전자에 매각하고 같은 해 메인기판(HDI) 사업도 과감하게 정리했다.
지난해 말엔 이사회를 열고 베트남 소재 FC-BGA 생산 설비와 인프라 구축에 8억5000만 달러(1조200억 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투자금은 2023년까지 단계적으로 집행되며 이를 통해 베트남 법인을 FC-BGA 대표 생산기지로 육성한다.
중국 쿤샨법인도 청산했다. FC-BGA와 플립칩칩스케일패키지(FC-CSP) 등 반도체 기판은 국내 라인에서 양산해 왔는데 지난해 RFPCB 사업을 정리하고 베트남법인을 FC-BGA 생산거점으로 만들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기가 기술적 진입장벽, 수익성이 낮은 RFPCB 부문을 완전히 정리하고 고부가가치 반도체패키지 사업에 힘을 더욱 쏟기 위한 움직임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실적 컨퍼런스콜에서는 기존 PC용뿐만 아니라 서버용 FC-BGA 시장에도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고부가 서버용 제품 개발을 진행 중으로 올해 하반기부터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FC-BGA와 함께 삼성전기 패키지 사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FC-BGA가 포함된 패키지솔루션 사업부문 매출은 4789억 원으로 지난 분기 대비 9%, 전년 대비 38% 증가했다. 전기 기준으로 3개 부문(컴포넌트·광학통신·패키지) 가운데 매출이 늘어난 곳은 패키지 부문이 유일했다. 전체 부문 가운데 매출은 아직 작지만 성장성은 높다고 평가받는다.
김지산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5700억 원이었던 삼성전기의 FC-BGA 매출이 "2024년엔 1조1000억 원으로 두 배가량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찬호 현대차증권 연구원 역시 "올해 기판 사업부의 실적이 늘어나면서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을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덕현 사장은 "반도체 기판에서도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며 "최근 급격히 확산 중인 5G, Al, 클라우드 기술에 필요한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갖춰 가고 있다. 관련 기술 개발과 시장 우위 확보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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