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나이키·이케아…인텔 너도? '탈러시아' 행렬에 삼전·현대차 '고심'


러시아서 '잘 나가는' 韓 기업 제재 확산 분위기 예의주시

인텔은 4일 공식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러시아와 벨라루스 고객에 대한 모든 제품 선적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AP.뉴시스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현대차) 등 러시아 시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해지는 분위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 이후 각 분야 글로벌 기업들의 '탈(脫)러시아'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를 중심으로 한 고강도 옥죄기에 각국 기업들이 하나둘씩 팔을 걷어붙이면서 국내 기업을 향한 '러시아 보이콧' 노선 동참 압박 수위도 덩달아 높아질 가능성도 크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인텔은 전날(4일)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러시아와 벨라루스 고객에 대한 모든 제품 선적을 중단했다"고 밝히고, 구호 활동을 위해 120만 달러(약 14억5000만 원) 규모의 직원 기부 및 매칭 캠페인을 개시했다.

인텔은 "우크라이나와 주변국 국민들, 그리고 해당 지역에 가족·친구·연인이 있는 사람 등 이번 전쟁으로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한다"며 "이 어려운 상황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전 직원, 특히 해당 지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임직원들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전쟁을 즉각 종식하고 조속히 평화를 되찾을 것을 촉구한다"며 "우크라이나 국민과 지구촌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애플도 러시아에서 '아이폰', '아이패드' 등 자사 모든 제품의 판매를 중단하고, 결제 서비스인 애플페이 사용도 제한했다. 스포츠용품 제조사인 나이키 역시 러시아 내 온라인 제품 판매를 중단하고, 현지 116개 오프라인 매장도 일시 폐쇄 조치했다.

이외에도 미국 완성차 제조사 포드는 러시아 내 합작회사 운영 중단을 선언했고, 제너럴모터스(GM)는 러시아 수출을 중단했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30%대 점유율로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20년 갤럭시 Z 폴드2 출시 당시 러시아 모스크바 하이드로프로젝트에 설치된 삼성전자 옥외광고. /뉴시스

미국 외에도 각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들도 '러시아 보이콧'에 하나둘씩 동참하고 있다. 스웨덴 대표 의류 브랜드 H&M과 가구 업체 이케아는 러시아 판매를 중단했고, 일본 대표 완성차 제조사인 도요타와 혼다도 현지 공장 문을 닫고 수출도 제한했다. 또한, 최근 현대차와 친환경 기술 협력을 공언한 영국·네덜란드 합작 에너지회사 쉘을 비롯해 영국의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노르웨이 에퀴노르 등은 러시아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 안팎에서는 글로벌 무대에서 영역을 넓히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 동참을 요구하는 직간접적 압박이 갈수록 세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CNBC 방송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3일 시장조사업체 CCS인사이트 수석애널리스트인 벤 우드와 인터뷰 내용을 인용, 애플의 '러시아 보이콧' 조치가 삼성전자 등 글로벌 경쟁사들에 비슷한 조치에 나서라는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그러나 아직 국내 기업들은 긴장 속에 사태를 예의주시하되 직접적으로 제재 동참 의사를 밝히지는 않고 있다. 현지에서 두 자릿수대 시장 점유율로 각 분야 선두를 지키고 있는 만큼 섣부리 선 긋기에 나서기 부담스럽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경우 러시아 TV, 스마트폰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34%대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스마트폰 시장에서 직접 경쟁을 벌이는 애플의 경우 현지 시장 점유율이 삼성전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브랜드 시장조사업체 OMI가 발표한 '소비자들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무려 10년 동안 1위를 지켰다. 그만큼 러시아는 삼성전자에 중요한 글로벌 마켓이다. 최근 출시한 플래그십 스마트폰 브랜드 '갤럭시' 시리즈의 최신작 '갤럭시S22' 판매국가 리스트에도 러시아는 빠지지 않았다.

현대차는 지난 1일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여파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가동을 5일까지 중단한다고 밝혔다. /현대차 제공

현대차와 기아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현재 러시아 현지에서 판매되는 신차 5대 중 1대는 현대차 또는 기아차다.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 시장에서 기아는 20만5801대를 판매, 12.3%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2위에 올랐고, 현대차는 같은 기간 17만1811대(10.3%)를 판매해 3위를 차지했다. 양사가 러시아 시장에서 차지한 비율은 22.6%로 르노그룹(33.8%)에 이어 2위다.

특히, 기아의 경우 경차 '모닝(수출명 피칸토)'과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셀토스', 중형 세단 'K5', 중형 SUV '쏘렌토', 미니밴 '카니발'이 각 부문 최고의 차량으로 선정된 데 이어 지난해 '러시아에서 가장 선호하는 대중 브랜드'에 이름을 올리며 '2021 러시아 올해의 차'에서 무려 6개 부문을 석권했다.

현대차가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가동을 멈췄을 때도 회사 측은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여파"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무관한 결정이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러시아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거나 현지 판매를 중단하는 등 자발적인 제재에 나서고 있고, 이 같은 기업의 수도 늘고 있다"라면서 "그러나 앞서 '러시아 보이콧'을 선언한 기업들의 경우 상당수가 그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물론 러시아 수요가 회사 경영에 미치는 정도 면에서 (국내 기업들과) 결이 다르다.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섣불리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못하는 데는 중국 기업들의 공세가 한몫을 한다.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미국 애플보다 중국 샤오미가 더 강력한 경쟁상대다"라며 "만일 러시아 보이콧에 동참하면, 그 반사이익은 고스란히 중국 기업들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은 물론 이번 러시아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든다고 해도 한 번 빼앗긴 점유율을 되찾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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