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선영 인턴기자] 삼성전자 노조가 쟁의권 실행에서 한발 물러나 회사 측에 대화를 요청했다.
노조 측이 파업 결정을 일단 유보하기로 하면서 삼성전자는 창사 53년 만에 노조 파업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지는 않았다. 다만, 노조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최고 경영진과 대화 성사 여부에 따라 강경 대응에 나설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긴장감은 여전히 남아 있는 모양새다.
전국삼성전자노조와 삼성전자사무직노조 등 삼성전자 내 4개 노조가 결성한 공동교섭단은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날 노조 측은 △공정하고 투명한 임금 지급 △최소한의 휴식을 취하며 일할 수 있는 권리 보장 △헌법이 보장한 노조 교섭권 인정 및 불성실교섭 중단 등을 요구하면서 회사 최고경영진을 향해 대화에 나설 것을 거듭 촉구했다.
먼저 노조 측은 임금 문제에 대해 "직원마다 인사고과 평가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낮은 직급인 CL1 직원 중 10년 차의 월급은 세후 200만 원대인데 반해 가장 높은 직급인 CL4 직원 중 10년 차의 월급은 세후 600만 원대"라며 "삼성전자 12만 임직원들은 임금 격차가 매우 크다. 격차를 축소하기 위해 사측에 계약 연봉을 정률(%)로 인상하는 것이 아니라 정액(원) 인상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성과급에 관해서도 "삼성전자 성과급은 직원들에게 EVA(경제적 부가가치)를 기반으로 지급하는 불투명한 구조"라며 "경쟁사인 SK하이닉스는 지난해부터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변경했다. 삼성전자도 성과급 지급을 투명하게 영업이익에 기반하는 것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또 근무 환경 개선 필요성도 강조했다. 노조 측은 "삼성전자가 복지 좋은 기업으로 알려졌지만 많은 기업들이 누리고 있는 '여름휴가'가 단 하루도 없는 기업"이라며 "SK하이닉스는 매년 6월, 현대중공업은 매년 하계휴가 9일,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매년 하계휴가 5일 등 대부분의 기업들이 휴식권을 보장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최소한의 휴식할 권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노조는 최초 △계약 연봉액 1000만 원 정액 인상 △영업이익 25%로 성과급 지급기준 준칙화를 요구했지만, 이후 수정안을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교섭 결정 직전 삼성전자 측에 △계약 연봉 정액 인상, 성과급 지급기준 마련을 전제로 한 인상 수준 조정 가능 등 수정안을 제시했음에도 회사 측이 시종일관 '어떠한 제안도 수용할 수 없다'는 불성실한 태도와 자세로 일관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노조 측은 당장 쟁의권을 실행에 옮기기보다 삼성전자 최고경영진과 만나 핵심 요구 사항을 전달하고 합의점을 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노조는 지난해 9월부터 5개월간 임금교섭을 15회에 걸쳐 진행했지만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해 지난 4일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노동쟁의 조정신청을 접수했다. 이후 11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친 노사 조정회의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에 중노위가 14일 오후 조정중지 결정을 내림에 따라 노조는 쟁의권을 확보한 상태다.
이현국 전국삼성전자노조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파업은 하나의 수단"이라며 "지금 삼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는 삼성전자 한 곳의 문제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다른 그룹사와 연대하는 방안도 고민은 하고 있다. 현재 각사 노조들이 같이 임금 교섭을 하고 있고, 조정중지 결정이 떨어진다면 강력하게 투쟁에 나설 계획"이라며 파업 가능성을 열어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