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경현 기자] LG에너지솔루션 다음에 진행하는 대어급 IPO(기업공개)로 기대를 모았던 현대엔지니어링이 IPO 일정을 철회했다. 갑작스러운 일정 철회를 둘러싼 배경과 향후 재도전 시기 등에 시선이 쏠린다.
28일 현대자동차그룹 건설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금융감독원에 철회 신고서를 제출하고 상장 계획 연기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현대엔지니어링은 내달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목표로 지난해 12월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예상 시가총액은 6조 원대로, 건설 대장주로 부상할 것으로 점쳐져 왔다.
공모 일정 철회는 앞서 진행한 기관투자가 수요예측에서 저조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6일 마감한 기관 수요예측에서 최종 경쟁률이 50대 1에 그치는 등 기관 참여가 저조했다. 이에 공모가는 희망밴드(5만7900~7만5700원) 최하단 결정도 위태롭게 되면서 철회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진행된 대어급 IPO LG에너지솔루션의 수요예측 경쟁률(2023대 1)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보통주에 대한 공모를 진행해 최종 공모가 확정을 위한 수요예측을 실시했으나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측면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해 잔여 일정을 취소하고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기관 투심이 얼어붙은 데는 기본적으로 최근 증시를 둘러싼 시장 안팎의 상황이 녹록지 않은 점이 영향을 미쳤다.
최근 미국의 긴축 우려와 인플레이션 우려, 러시아발 지정학적 리스크 등 글로벌 악재의 영향으로 코스피지수가 2600선까지 무너지는 등 증시 분위기가 어두운 상황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로 건설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악화된 영향 역시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IPO를 앞두고 일각에서 일어난 고평가 논란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엔지니어링 시가총액이 공모가 하단 가격 기준으로도 4조6293억 원에 달하면서 모회사인 현대건설(4조4600억 원), 경쟁사인 삼성엔지니어링(4조2000억 원)의 몸 값을 뛰어넘는 것이 기관들의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진행하는 공모 구조로 인해 기관뿐 아니라 일반투자자들로부터 회의적인 시선을 받을 수 있었다는 시각도 나온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구주 매출 1200만 주(75%)와 신주 모집 400만 주(25%)로 9264억 원 공모를 계획했다. 공모가 하단 기준 회사에 유입되는 자금은 2316억 원에 그치고, 나머지 약 7000억 원은 정의선 현대차 회장(3093억 원),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823억 원), 현대글로비스(1166억 원), 기아·현대모비스(각 933억 원)에 돌아간다.
구주매출이 높으면 회사 자체보다 기존 주주에게 이득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통상 공모주 투자자들은 IPO로 조달된 자금이 회사로 유입돼 신규 투자 등에 활용되고, 상장 후 회사 성장의 기폭제로 쓰이기를 기대한다.
한편, 현대엔지니어링이 공모 일정을 철회하자 건설업계 투심은 오히려 개선됐다. 경쟁 업체들에 리스크 해소로 작용해 건설주 수급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대형 건설주인 현대엔지니어링이 국내 증시에 입성할 경우 다른 건설주에 대한 투자금을 흡수할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
이날 오전 11시 현대건설은 전날보다 8.05%(3100원) 오른 4만1600원에 거래됐다. DL이앤씨(3.76%)와 GS건설(4.58%), 대우건설(4.68%), HDC현대산업개발(5.88%), 삼성물산(4.43%)도 전체적으로 올라 4~5%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 재도전 시기는 4월 이후로 전망된다. 지난해 4분기까지의 실적이 집계되는 4월 이후에야 공모가 가능하다. 지난해 12월 6일 상장 예비 심사를 통과했으므로 규정상 6월까지 증시에 입성하면 절차상 문제가 없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국내 증시와 건설업종의 투자심리 등에 대한 분위기가 개선될 경우 적절한 시기에 다시 일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공모 일정은 미정으로 적절한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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