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가 될 순 없어" 중대재해법 시행에 숨죽인 건설업계


설까지 공사 멈추고 연휴 늘리고…'눈치싸움' 벌여

오늘(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가운데 건설사들이 처벌 1호를 피하기 위해 공사를 멈추는 등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선화 기자

[더팩트|이민주 기자] 오늘(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시행된 가운데 건설사들은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이날부터 현장 작업을 중단하고 내달까지 주말 공휴일 작업을 중단하는 등 잔뜩 몸을 움츠렸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다수 건설 현장이 작업을 중단하고 이른 설 연휴에 돌입했다.

대우건설과 포스코건설, DL이앤씨는 이날부터 설 연휴에 들어간다. DL이앤씨는 설 연휴를 하루 늘렸으며, 대우건설은 현장에 따라 설 연휴를 1~2일 연장하도록 했다. 포스코건설은 내일까지 휴무를 권장하는 내용의 공문을 전 사업장에 발송했다.

현대건설은 이날을 '현장 환경의 날'로 지정하고 최소 인원만 현장에 투입하기로 했다. 내일(28일)은 협력사 임직원 등이 참여하는 안전 워크숍을 연다. 현대건설은 내달까지 주말 및 공휴일 작업을 없애기로 했다.

공기 단축을 위해 휴일 작업을 마다치 않던 건설 현장이 설 연휴를 목전에 두고 '단체 휴업'에 나선 것은 이날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과 무관하지 않다.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처벌을 내리는 법안이다. 처벌 수위는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의 경우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 법인은 50억 원 이하 벌금이다.

중대재해는 산업안전보건법상에 따라 '산업재해 중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원인으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발생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지난 1월 중대제해처벌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며 이날부터 시행된다.

법안에서는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사업을 총괄하고 안전 보건과 관련한 최종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회장, 오너, 총수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즉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회사 경영 전반을 관리하는 CEO가 처벌을 받을 수 있고 이에 따라 '경영 마비'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더구나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대상 1호'가 될 경우 '사고 회사'라는 낙인이 따라다니는 것은 물론 향후 사례의 판례로 회자되게 된다.

CEO랭킹뉴스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 현장 213개에서 222명이 사망했다. 사진은 아파트 붕괴 사고가 일어난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이동률 기자

특히 건설업계는 산재 사망사고가 많은 대표 업종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업무상 사고 사망자 수는 882명이며 이중 51.9%가 건설업에서 발생했다. CEO랭킹뉴스가 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CSI)에 등록된 건설사고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에 건설 현장 213개에서 222명이 사망했다.

이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추가 안전 조치에 나선 곳도 있다. 현대건설은 최근 'H안전지갑제도'를 마련했으며, 롯데건설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안전소통센터'를 확대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현대건설의 H안전지갑제도는 국내 건설업계 최초로 근로자에게 무재해 인센티브를 제공해 자율적인 안전 관리를 독려하는 제도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가 안전수칙 준수, 법정 안전교육 이수, 안전 신고 및 제안을 할 경우 근로자에 안전 포인트를 지급한다. 이달 시범 운영을 시작으로 1분기 내 전 현장에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롯데건설의 '안전소통센터'는 사업장 주변의 위험요인 등 안전·보건에 관련된 사항을 제안받아 신속하게개선하고 조치하기 위한 소통 창구다. 채널에는 임직원, 파트너사, 근로자 등 모든 종사자가 참여할 수 있다. 현장 속 위험요소 또는 안전 개선사항 발견 시 공식 홈페이지나 유선전화를 통해 관련 내용을 제안할 수 있으며, 기여한 제안은 내부 심사를 거쳐 포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 시공능력평가 기준 '10대 건설사' 대표들의 역시 신년사에서 '안전 문제'를 한층 강조하기도 했다. 김형, 정항기 대우건설 공동대표는 새해 경영활동의 최우선 가치로 안전을 꼽았다.

김형, 정항기 대표는 "우리 대우건설의 모든 경영활동의 최우선 가치는 바로 안전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라며 "중대 재해로 인해 고귀한 생명을 잃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석주 롯데건설 대표는 "안전보건관리를 경영활동의 최우선 가치로 인식하고 전 임직원의 역량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공사를 마냥 중단할 수도 없고 처벌을 피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첫 처벌 대상이 되는 것만은 피하자는 것"이라며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고는 아무리 대비를 해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생하기 마련이다. 광주에서 일어난 사고로 건설업계에 대한 시선이 특히나 곱지 않다. 아무래도 다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법 시행을 앞두고 안전한 현장을 만들기 위해 조직 개편, 안전 관련 제도 보완 등에 집중해 왔다. 첫 적용 사례가 되면 그간 쌓아온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며 "요즘은 원래도 주말에는 공사를 많이 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최근 여러 사고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만큼 안전하게 가자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전했다.

minju@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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