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재근 기자] 국내 대표 경제단체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수장을 맡은 최태원 회장(겸 SK그룹 회장)이 각 당의 주요 대선후보를 잇달아 만나 재계 목소리를 대변하며 '재계 맏형'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21일 대한상의에 따르면 최 회장은 19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와 만나 주요 경제 현안에 관해 논의했다. 최 회장과 대선 후보 간 간담회는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12월 국민의당 윤석열 후보에 이어 세 번째다.
특히, 이번 간담회는 국내 대표 경제단체장과 '친노동계' 성향의 진보정당 대선후보가 만나 정당한 기업활동을 위한 민관 협력 의지를 다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세 번의 간담회에서 다뤄진 주요 현안은 △기업의 역할 △규제 개혁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등 각 후보의 성향, 정당의 정책 방향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였지만, 경제계에선 최 회장이 각 후보들에게 전달한 메시지에 관해 "'기업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달라'는 큰 틀의 방향은 모두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 회장은 이번 간담회에서 심 후보가 공약으로 제시한 주4일 근무제도에 대해 "각 회사 형편상 문제가 있어서 일률적으로 강요하지 못하고 편차가 있다. 시범 삼아 한 달에 한 번, 두 번 정도 하는 곳이 있다"며 기업의 고충을 전달했다. 아울러 대한상의의 역할에 대해 "국내 기업들이 세계적인 추세가 된 ESG 경영을 잘 준비해 정착할 수 있도록 트렌드를 맞춰 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이재명 후보와 간담회에서는 "규제를 하지 말아달란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며 시의적절한 규제와 더불어 기업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규제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한 달여 후에 열린 윤석열 후보와 만남에서도 최 회장은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 무역 분쟁 등 대내외 불확실성을 강조하면서 '성장 잠재력을 위한 미래 산업 투자'와 '낡은 법 제도의 대대적인 개혁', '제도개선과 글로벌 협력을 골자로 한 경제안보 전략 수립' 등을 요구했다.
글로벌 경쟁 환경에 발맞춘 시스템 개편을 요구하는 경제단체장의 목소리는 올해 초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도 나왔다.
최 회장은 지난 1월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장 초청 정책강연회'에 참석해 "공정경제 토양을 만들기 위해 정책 당국과 기업 간 인식 차를 좁혀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산업·시장 판도가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이 같은 변화가 공정거래 정책에 반영되길 바라며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과 경쟁에 불리한 점 없도록 공정거래정책의 탄력운영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같은 달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도 "4차 산업혁명과 기후변화, 글로벌 밸류체인 변화 등 격변의 시대에 기업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기회를 만들어 내는 일이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중요한 과제"라며 "국가가 기업의 새로운 역할을 잘 북돋아 주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최태원식 소통'은 경제계와 국민들을 잇는 소통창구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한상의가 '내가 세상을 바꾼다'는 모토로 오픈한 '대한상의 소통플랫폼'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최 회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소통플랫폼은 경제·사회 이슈에 대해 기업인뿐만 아니라 국민 누구나 의견을 제안하고, 공감을 얻으면 대한상의가 정부와 국회에 건의하거나 자체 사업을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개방형 의견수렴 사이트다.
이 플랫폼은 운영 두 달여 만에 가입회원 수 1만5000명, 일평균 방문자 수는 5000명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소상공인을 위한 실질적 지원책 확대 △저출산 정책 개선 △라인 배송 포장재 축소 등 모두 430건의 제안을 받으며 '경제계 소통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소통플랫폼에서 이뤄진 투표와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대정부 건의 및 자체 후속 사업을 준비하고 있으며 추진 결과는 플랫폼을 통해 피드백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최 회장은 지난해 국가발전에 이바지하는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해 사업화를 지원하는 창업 공모전 '아이디어리그'를 기획, 직접 심사에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최 회장은 4000여 개 이상의 아이디어 가운데 최근 높은 점수를 받은 상위 4개를 선정, 해당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사업자 공모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한상의는 박용만 전 회장 때부터 재계의 목소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역할을 주도해 왔다. 특히, 바통을 이어받은 최태원 회장은 다양한 방식과 실험으로 민관 소통창구 역할에 앞장서고 있다"라며 "곧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을 비롯해 공공기관에 적용되는 노동이사제의 민간 도입 우려 등 경제계 안팎에 불안요소가 산재한 상황에서 경제단체장의 적극적인 소통 행보가 일하기 좋은 경영 환경을 조성하는데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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