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짜리 한국 조선업 '빅2' 개편 프로젝트, EU 불허에 좌초"

현대중공업 그룹의 조선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이 EU로부터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 불허 결정을 받은지 하루 만인 14일 공정위에 기업결합 신고를 철회했다. /더팩트 DB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신고 철회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조선업계 최대 빅딜로 꼽혔던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지주사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이 유럽연합(EU)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됐다.

시너지를 기대했던 현대중공업과 '새 주인' 찾기에 실패한 대우조선해양을 두고 시장에서 엇갈린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조선업계에서는 "나라 조선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3년짜리 개편 작업이 EU의 벽에 부딪혀 좌초됐다"라는 아쉬운 반응도 나온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전날(13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독과점 가능성을 이유로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 승인 불허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9년 12월 EU가 심사에 나선 지 2년 2개월 만에 나온 결과다.

사실상 무산이라는 업계의 평가가 나온 가운데 한국조선해양은 이날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대우조선해양과 기업결합 신고를 철회했고, 공정위도 그간 진행해 온 심사 절차를 마무리 지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EU 경쟁 당국의 금지 결정으로 사실상 당사회사가 본건 기업결합을 계속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한국조선해양이 기업결합 신고 철회서를 제출한 만큼 계약 종결을 확인하는 대로 사건절차규칙에 따라 심사 절차 종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2년간 EU 설득 작업에 공들여 온 현대중공업은 "EU 공정위가 오래전에 조건 없는 승인을 내린 싱가포르와 중국 공정위의 결정에 반하는 불허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당사는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현대중공업은 앞서 글로벌 법률자문사 프레쉬필즈, 경제분석 컨설팅 기업 컴파스 렉시콘으로부터 자문을 받아 '시장 점유율만으로 시장 지배력을 평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을 끊임없이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측은 이번 EU의 기업결합 불허 결정과 관련해 불합리적인 결정이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조선업계 최대 '빅딜' 좌초 소식 이후 양사에 관한 증권가의 평가는 엇갈렸다. 먼저 현대중공업에 관해서는 유상증자에 따른 주가 가치 하락 우려가 해소됐다는 긍정 평가가 주를 이뤘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한국조선해양은 대우조선해양 인수 주체로 인수과정에서 대규모 유상증자가 예정돼 있었고, 이에 따른 희석 우려가 주가에 반영돼왔던 만큼 인수 불발로 인해 이런 할인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는 "현대중공업그룹으로의 피인수 과정에서 기대됐던 1조5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가 불발되면서 재무적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합병 무산이 한국 조선업 전반에 미칠 영향에 관한 시장의 전망에서도 온도 차가 나타난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양사 인부발표 시기에는 조선사별 선가 경쟁이 존재했지만, 현재는 조선사들이 충분한 일감을 확보한 상태"라며 "인수 무산을 업종 구조조정 실패로 간주, 조선업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EU의 결정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LNG선 시장은 삼성중공업을 비롯해 중국 후동조선소, 일본 미쓰비시, 가와사키 등 대형조선사와 러시아 즈베즈다 등 경쟁자들이 공존하는 데다 LNG선 화물창에 대한 기술 독점권을 가진 프랑스 GTT, 노르웨이 모스 마리타임사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은 조선소는 전 세계에 30개 이상이 있어 특정 업체에 대한 독점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대표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5일 진행된 CES 2022 미디어 행사 당시 대우조선해양과 기업 결합은 단순히 기업 간 M&A가 아닌 한국 조선 산업의 체질을 개선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조선 산업 경쟁력 제고 기회를 잃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추진은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 조선업이 생사기 위기를 겪으면서 기존 '빅 3' 체제를 '빅 2'로 개편해 조선업 전반의 효율성을 제고해야한다는 데 민관이 뜻을 모은 결과물"이라며 "나라 조선 사업 개편을 위한 3년짜리 프로젝트가 EU의 결정만으로 좌초된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곡된 시장구조 내에서 업체 간 과잉경쟁에 따른 제살깎아먹기 등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겪었다"라며 "2007~2008년 초호황기에서 벼랑 끝까지 몰리는 데 1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장환경 속에 이 같은 일이 또 벌어질 수도 있다"라며 "대우조선해양의 민영화는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대표 역시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내린 글로벌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2'에서 "대우조선해양과 기업 결합은 단순히 기업 간 M&A가 아닌 한국 조선 산업의 체질을 개선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를 보유 중인 산업은행을 비롯해 금융 당국은 EU의 불허 결정과 관련해 "유감스럽다"라고 밝히면서도 재매각 추진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이에 업계에서는 포스코(POSCO)와 한화, SM그룹 등 앞서 인수를 추진했거나 의사를 밝힌 바 있는 기업들이 새로운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되지만, 막대한 자금과 더불어 사업 연계 및 시너지를 고려할 때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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