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원전·중고차 문제도 결국엔 '우이독경'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어디를 가나 '오징어게임'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서바이벌 게임 참가자 456명이 오직 우승자 1명에게 지급되는 상금 456억 원을 두고 목숨을 건 게임을 벌인다는 스토리다.
인스타그램 등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면, 재계 총수부터 연예인, 스포츠스타에 이르기까지 이 드라마에 마음을 빼앗긴 모양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400여 명의 게임 참가자들의 생존기를 보고 있자니, 문득 이 사회와 묘하게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동일한 상황과 조건에서 경쟁을 벌여 큰돈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참가자들의 기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실망과 좌절, 심지어 공포로까지 변질되고 이 과정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낙오자'가 돼 목숨을 잃는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의 목소리는 '허공의 메아리'일 뿐 이들은 무조건 정해진 '게임의 룰'을 따라야 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라고 다를까.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과 신용평가기관 코리아크레딧뷰로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는 우리나라 무주택 30·40세대는 사실상 집을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을 상실했다고 분석했다. 원인은 수년째 지겹도록 거론된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이다. 건산연은 여기에 대출 규제까지 더해져 사실상 자금 마련이 불가능해졌다고 진단했다.
말 그대로 의식주가 무너지는 동안 정부가 보여준 대응은 어땠나. 지난 7월 '3기 신도시 사전청약 분양가 이게 정상입니까?'라는 제목의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작성자는 '정부를 믿어달라. 부동산 잡겠다'는 말을 믿은 결과에 대한 상실감을 토해냈다.
'30대 영끌 매수가 도움이 되느냐. 앞으로 서울과 신도시 공급물량을 고려해 기다렸다가 합리적인 가격에 분양받아라'는 전 국토부 장관의 자신 있는 발언은 1년 만에 분노의 대상이 됐다.
눈과 귀를 닫은 정부 정책이 서민의 부담으로 돌아온 사례가 어디 이뿐인가. 올해 4분기부터 국민들이 내야 할 전기요금이 오른다. 지난 2013년 이후 8년 만이다.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등 생산비용 증가가 인상의 이유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발표 당시부터 전량 수입하는 LNG 의존도에 대한 우려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지만, 결국 국민들은 '탈원전 청구서'를 받아들게 됐다.
수년째 표류 중인 '중고차 시장 개방' 문제도 대표적인 정부의 무관심 사례다. 중고차 시장은 이미 허위매물 거래 등 소비자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중고차 사기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할 정도다. '레몬 마켓'으로 변질됐다는 평가가 나온 지도 오래다.
그만큼 시장 개방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매년 높아지고 있다. 실제 올해 시민단체가 의뢰한 설문조사에서 20~60대 성인남녀 1000명 중에 80%가 시장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중고차와 완성차업계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는 정부의 미온적 태도는 여전하다. 마치 드라마 속 게임 참가자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무심히 보고 있는 가면 쓴 진행요원처럼 말이다.
국민들은 '오징어게임' 참가자가 아니다. 정부는 국민들이 지속해서 철문을 두드리며 고통을 호소한다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 정책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같은 게임의 룰처럼 한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는 대상이 아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과 시스템으로 '주거 사다리'가 무너지는 등 사회 곳곳에서 부작용이 생기고, 그것이 국민들의 피해로 이어진다면 정부는 사태 수습을 위해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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