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가석방 출소…걱정, 비난, 우려 그리고 기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재수감된 지 207일 만에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의왕=이동률 기자

"열심히 하겠다" 이재용 부회장, 미뤄뒀던 경영 현안 챙긴다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저에 대한 걱정과 비난, 우려 그리고 큰 기대를 잘 듣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지난 2016년 말 국정농단 관련 수사를 기점으로 사실상 햇수로만 6년째 경영 공백이 불가피했던 이 부회장은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걱정을 끼쳐드렸다. 정말 죄송하다"라며 고개 숙여 사과하고, 경영 현안 챙기기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이날 오전 10시 5분, 7개월여 동안 세상과 격리돼 있던 이 부회장은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했다. 지난 9일 8.15 광복절을 맞아 추진된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 회의에서 가석방이 확정, 지난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재수감된 지 207일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재계 안팎의 관심이 쏠린 대목은 이 부회장이 출소 후 던진 메시지다. 수척해진 표정으로 구치소 정문을 통과한 이 부회장은 가장 먼저 취재진 카메라를 향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후 "저에 대한 걱정과 비난, 우려, 큰 기대를 잘 듣고 있다. 열심히 하겠다"라는 짧은 발언을 남기고 구치소를 빠져나갔다.

이날 이 부회장의 발언을 두고 재계에서는 그간 삼성을 향한 대외 시선과 불확실성에 대한 위기의식과 더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현안 챙기기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함축적으로 담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총수 부재 위기 속에 삼성전자의 신규 투자 등이 지지부진 하는 사이 글로벌 반도체,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은 앞다퉈 대규모 투자에 나서며 공세를 펴고 있다. /남용희 기자

◆ 걱정

이 부회장의 출소가 확정되기 전부터 경제계에서는 '총수 부재'라는 초유의 위기에 직면한 삼성의 위기론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삼성전자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지난 6월 15.7%로 중국 샤오미(17.1%)에 1위를 내줬고,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을 위한 대규모 M&A 등 신규투자도 수년째 자취를 감췄다. 지난 5월 삼성이 공식화한 17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신규 파운드리 공장 설립 계획도 두 달이 넘도록 부지 선정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핵심 성장 동력인 반도체 부문이다. 삼성전자의 신규 투자가 지지부진 하는 사이 대만의 TSMC는 지난 4월 향후 3년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5월에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5곳의 반도체 생산 공장을 추가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 선언한 미국의 인텔 최근 역시 반도체 생산능력 확대 전략의 일환으로 글로벌파운드리(GF) 인수 추진 계획을 밝힌 데 이어 지난달 기술전략 설명회에서는 세계 최초로 0.1㎚(나노미터) 시대를 열겠다며 추격 의지를 드러냈다.

메모리반도체 부문도 비상등이 켜졌다. 연말 가격 하락을 점치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면서 삼성전자 주가도 연중 최저치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날 삼성전자의 주가는 전일 대비 3.38% 내린 주당 7만44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 부회장이 출소 직후 첫 행선지로 한남동 자택이나 부친인 고(故) 이건희 회장이 안장된 수원 선영이 아닌 삼성전자 서초 사옥을 낙점한 것 역시 삼성 안팎에 산재한 불확실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재계의 해석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가석방이라는 행정 처분에 따른 활동 제약으로 온전한 경영 복귀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5월 중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 /임세준 기자

◆ 우려

이 부회장이 출소했지만, 여전히 재계에서는 '온전하지 못한 경영 활동'에 관한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가석방은 '형 면제'가 아닌 형기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형기 내 재범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임시로 풀어주는 행정 처분으로 이 부회장은 형기 종료일인 내년 7월 18일까지 거주지는 물론 국내외 모든 동선에 제한을 받는다.

아울러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른 취업제한 규정에 따라 형 집행 종류 기점으로 향후 5년 동안 취업이 제한된다. 여기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및 프로포폴 투약 혐의와 관련한 별건의 재판도 진행 중이다. 이에 재계 안팎에서는 사실상 '반쪽 복귀'라는 평가와 더불어 사면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의 가석방이 확정된 지난 9일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국내 주요 경제단체는 법무부의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취업 제한과 해외 출장 제약 등을 고려한 행정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총수의 경영 복귀 자체는 삼성으로서도 반가운 일일 수밖에 없지만, 사면이 아닌 가석방이라는 행정 처분에 따른 여러 제한은 사업 현장 점검 및 글로벌 파트너사 미팅 등 대외 행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5월 대국민 발표 당시 경영권 승계, 노동, 시민사회 소통 등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권고한 각 의제와 관련해 준법의 가치를 실현하고, 회사 가치를 제고하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공언했다. /더팩트 DB

◆ 비난

이 부회장의 가석방 결정을 두고 환영의 목소리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부 시민단체는 이날 서울구치소 앞에서 가석방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삼성과 이 부회장을 둘러싼 일각의 비판적 시선에 관해 이 부회장은 앞서 지난해 5월 삼성 서초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준법의 가치를 실현하고, 건전한 노사 문화 구축과 더불어 회사 가치를 제고하는 일에만 몰두하겠다"라며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전력을 쏟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이후 삼성의 내부 변화는 뚜렷했다. 이 부회장의 공언 이후 삼성전자는 지난 12일 창사 이래 처음으로 삼성전자사무직노동조합, 삼성전자구미지부노동조합, 삼성전자노동조합,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등 4개의 노동조합으로 구성된 공동교섭단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외에도 삼성전자는 계열사 간 부당지원 논란이 이어져 온 주요 사업장의 구내식당 운영에도 변화를 줬다. 지난 2월 수원과 기흥 사업장 내 구내식당 운영권을 외부에 개방한 데 이어 지난 11일에는 본사 소재지인 수원사업장의 사내식당 2곳을 비롯해 광주와 구미, 용인, 서울 등 모두 6곳의 식당 운영과 관련된 공개 입찰을 공고했다.

이외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지원 활동, 스타트업 육성, 협력사 상생 방안 마련, 청소년 교육 및 아동 보호 사업 등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월 올해 첫 현장경영 행선지로 경기도 평택 2공장 파운드리 생산설비 반입식 현장을 찾아 중장기 전략을 점검하고, EUV 전용라인을 살폈다. /삼성전자 제공

◆ 기대

활동 제약에 대한 우려가 공존하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복귀가 삼성의 멈춰선 '경영 시계'의 동력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당장 이 부회장의 향후 동선에 관해서는 밝혀진 바 없지만, 이 부회장이 그룹 주력 사업인 반도체·스마트폰 분야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모더나 백신 위탁생산 현장을 챙기는 것으로 복귀 첫 단추를 꿸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이 부회장은 앞서 지난 1월 올해 첫 현장경영 행선지로 경기도 평택 2공장을 낙점하고, 평택 2라인 구축·운영 현황과 반도체 투자·채용 현황, 협력회사와 공동 추진과제 등을 보고받고, 초미세 반도체 회로 구현에 필수적인 EUV 전용라인을 점검했다.

특히, 이날 청와대가 이 부회장의 가석방 결정 배경과 관련해 "엄중한 위기 상황 속에서 반도체와 백신 분야에서 이 부회장의 역할을 기대하며 가석방을 요구하는 국민들이 많다"라며 "(가석방 결정은)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고 입장을 내놓은 것 역시 이 같은 관측에 설득력을 더한다.

배터리 분야 점검도 우선순위로 꼽힌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배터리 제조사인 삼성SDI는 다음 달을 기한 목표로 삼고, 미국 신규 공장 부지를 선정을 위해 후보지역을 돌며 각 주정부와의 협상을 진행 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출소는 곧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복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며 "아직 글로벌 현장 경영의 제약이라는 걸림돌이 남아 있지만, 정부에서도 가석방의 배경에 관해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듯이 큰 틀에서 총수 부재라는 리스크를 해소한 만큼 신속한 결단과 의사결정 및 삼성의 경영정상화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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