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후무 '코로나 리스크' 속 신중한 정책 필요하다
[더팩트 | 서재근 기자] 내년도 최저임금이 오랜 진통 끝에 올해 대비 5.1% 오른 시간당 9160원으로 결정됐다. 이번 결정을 두고 청와대는 노동계에 눈치를 보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최저임금 1만 원'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는 게 이유일 것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경영계에서는 나름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반발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국내 경제단체들은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 직후 잇달아 입장문을 내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단체마다 표현의 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고용 악화'라는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란 우려섞인 전망에는 조금의 차이도 없다. 실제 대한상의는 "최저임금 상승은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경영 애로를 심화시키고, 고용시장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라며 일자리 안정자금 확대 등 지원 대책 마련을 촉구했고, 경총 역시 "최저임금 인상은 소상공인·자영업자는 물론 기업인들을 한계 상황으로 내몰고 실업난을 악화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 발전 상황을 고려해 이에 상응하는 만큼의 최저임금을 설정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역할이다. 문제는 이번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경제계에서 불만이 쏟아지는 결정적인 이유가 액수를 산정하는 데 결정적인 기준이 되는 '경제 상황'이라는 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 정상화를 고려한 것'이라는 게 공정위원들이 밝힌 이번 최저임금 인상률 선정 배경이다. 결국, 근거 없는 장밋빛 미래가 바로미터가 된 셈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전무후무한 '코로나 리스크'에 직면한 상황에서 과연 이런 셈법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해외여행자 격리를 면제하는 '트래블 버블' 추진 소식에 항공·여행·면세 업계 안팎에서 기대감이 높아진 게 불과 한 달여 전이다.
백신 접종자 수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코로나19 확진자 수도 진정국면에 접어들었으니 서서히 관련 업계 정상화를 위해 완화 정책을 내놔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예고 없는 4차 대유행이 번지면서 현재는 트래블 버블 무산론까지 거론되는 실정이다. 말 그대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작금의 경제 상황이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 결정이 서민경제에 미칠 영향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편의점 수는 4만 개를 훌쩍 넘어섰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자영업의 상징'으로 꼽히는 치킨 업계를 압도한다.
한국편의점주협의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 편의점 5곳 가운데 1곳은 인건비와 임대료를 제대로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저임금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지급불능 상태"라는 편의점주들의 외침이 노동계의 볼멘소리보다 더 설득력이 모자란다고 판단한 모양새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코브라의 역설'(문제 해결을 위해 내놓은 대책이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하게 만드는 것을 일컫는 용어)'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과거 인도가 영국 식민지였던 당시 코브라 개체 수가 늘자 영국 정부는 코브라를 잡아 오는 사람에게 포상금을 주는 정책을 내놨지만, 오히려 결과는 정반대였다. 포상금을 받으려 코브라를 사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은 매년 무조건 일정 비율 이상 올라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가게 운영이 힘들어지면, 고정지출을 줄이기 위한 명목으로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는 개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이든 수백에서 수천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회사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 1만 원'이라는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에 눈치볼 것이 아니라 왜 이를 지킬 수 없었는지 설득하고, 노동계와 경제계가 윈윈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최저임금 공약(公約)'에 눈치볼 때가 아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및 경영계가 안정적으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지원책 마련에 뒷짐만 지고 있다면 현 정부가 공언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공약(空約)'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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