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업 제대로 된 '경제 원팀' 이뤄야
[더팩트 | 서재근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LG에너지솔루션 충북 오창 제2공장을 찾았다. '국가 전략기술'로 낙점한 배터리 분야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정부가 새롭게 추진할 정책과 실행 의지를 국민에게 전달하기 위해 세계 1위 배터리 제조사를 방문했다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촉발된 중국의 일방적인 무역 보복 이후 수 년간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현지 보조금 대상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 때도 모르쇠로 일관했던 정부가 이제라도 해당 분야에 관심을 두는 것 자체는 반가운 일이다.
문 대통령이 LG에너지솔루션 사업장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번 정부 주관 이벤트는 준비과정부터 내용까지 지난 5월 삼성전자 평택 3공장을 찾았을 때와 똑 닮았다. 연구개발(R&D) 투자 비용의 40%에서 최대 50%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등 '조 단위' 지원으로 기술 경쟁력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게 정부 전략의 골자다.
그러나 아쉽게도 'K 이벤트'를 바라보는 현장의 시선은 그리 달가워 보이지 않는다. 두 번의 전략발표에서 거론된 '숫자'의 상당 부분은 기업의 자발적 참여로 채워졌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도 기업들의 투자 계획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문 대통령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이 중소기업들과 힘을 합쳐 2030년까지 총 40조 원 이상을 투자한다. 언제나 한 발 앞서 도전하는 기업인 여러분의 용기에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K-반도체 전략 보고 때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기업은 향후 10년 동안 국내에서 무려 510조 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이 '조 단위 보따리'를 싸고, 기업이 이를 풀며 자화자찬하는 모양새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정부가 '최고의 순방, 최고의 회담'이라고 자평한 양국 간 회담에서 삼성과 현대자동차, SK, LG그룹 등 '경제사절단'으로 문 대통령과 동행한 기업들은 바이든 정부에 44조 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을 내놨다.
경제계 일각에서 정부의 'K 이벤트'를 두고 "보여주기식"이라는 아쉬운 평가가 나오는 것도 민간 주도의 투자 대비 미비한 행정적 지원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 대통령이 글로벌 기업 투자 유치 세일즈에 발 벗고 나서는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투자 기업을 대상으로 전체 설비 투자액의 최대 40%까지 세액을 공제해주는 것과 비교해 보면 기업은 정부 여당에 할 말이 많다.
정부 여당이 입법을 추진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등 '반(反) 기업법'도 안팎의 볼멘소리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문 대통령이 'K-배터리'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지 하루 만인 9일 국내 대표 경제단체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는 정부의 중대재해법 입법 예고와 관련 "산업구조에 대한 이해와 제대로 된 기준이 없는 법안처리는 산업현장에서 혼란과 부작용을 초래할 뿐"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기업이 바라는 건 'K-반도체', 'K-배터리'와 같이 정부가 달아주는 'K 명패'가 아니다. 제대로 경영하고,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문 대통령이 강조한 연대와 협력 기반의 산업생태계 구축은 '사탕발림'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신성장 육성에 나서는 것처럼 정부도 기업과 진정한 의미의 '원팀'을 이뤄 국가 전략기술을 나라의 '신성장 동력'으로 키워내는 주춧돌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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