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지는' 국회…경제계 간극 좁히는 불씨 살리길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정치계에 '청년 정치', '젊어지는 정치' 바람이 꽤 거세게 불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11일 제1야당 국민의힘 당대표로 올해 36세인 이준석 전 최고의원이 당선되며 '헌정사상 최연소 당대표'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자 청와대가 대학교에 재학 중인 20대 청년비서관을 깜짝 발탁하며 '젊은 피' 수혈에 나섰다.
새 역사를 쓴 소수의 탄생이 수십여 년 동안 뿌리 깊게 박혀 온 정치권 문화를 통째로 바꾸기란 쉽지 않겠지만, 나이와 성별이라는 잣대 아래 두껍게 깔린 '유리 천장'을 조금씩 깨뜨리는 변화는 반갑게 느껴진다.
특히, 그간 '낡은 법과 규제'에 번번이 발목을 잡혀 온 경제계에서는 법을 만드는 입법부(국회)의 달라질 모습에 거는 기대가 조금은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내 대표 경제단체장이 매년 국회 문턱을 넘어 규제 개혁을 호소하는 것만 보더라도 경제 현실을 바라보는 재계와 정부·정치권 간 괴리는 여전히 커 보인다.
지난 17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개최한 '제5차 미래산업포럼'에서도 규제 완화는 주요 화두였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탄소중립 현황을 점검하고자 열린 이날 포럼에서 낡은 규제 사례로 무선업데이트(OTA) 기능이 거론됐다.
OTA는 무선으로 차량 성능을 개선하고 시스템 오류를 잡아주는 서비스로 미국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의 대표적인 고객서비스로 꼽힌다.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 간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기업에서도 OTA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OTA는 엄밀히 보자면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선 '시한부'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제55조)에서는 자동차 정비업자가 등록된 사업장 외의 장소에서 점검 및 정비작업을 금지하고 있다. 그나마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지난해 규제 샌드박스 특례를 신청해 임시 승인을 받았지만, 특례 기한 2년이 지나면 OTA는 처벌 대상으로 바뀔 수 있다.
이런 사례는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도 마찬가지다. 국회에 따르면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유통 시장이 급변하는 만큼 의무휴업일에 영업을 금지하도록 한 대형마트의 온라인 영업을 허가하겠다는 게 골자다.
애초 정부·여당은 전통시장을 비롯한 소매점 상권을 보호하겠다는 명목 아래 대형마트를 대상으로 월 2회 의무휴업을 강제했다. 그러나 법안 시행 5년 동안 의무휴업이 실제 전통시장 매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경제 지표는 매년 공개됐지만, 수년 만에 나온 개정안은 '온라인 영업' 허가다.
이미 규제에서 자유로운 이커머스 업계가 모바일 유통채널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개정안이 무슨 실효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제는 한술 더 떠 복합쇼핑몰 월 2회 의무휴업을 추진하고 나섰다.
"국회에서 법을 만드시는 분들 중에 과연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일반 음식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 설치된 키오스크(무인 주문기)를 사용했거나 주말에 시간을 내 가족들과 아울렛이나 쇼핑몰을 가본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다. 법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보고서 형태의 종이가 아니라 현장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겪어보고 느껴봐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최근 취재 현장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얘기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우화가 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 믿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외부 현상, 달라지는 환경에 눈과 귀를 닫는다면 우화 속 장님과 다를 바 없다.
지난달 71세 전 국무총리의 '장유유서' 발언을 두고 정치권 안팎이 시끄러웠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해서 '시대에 뒤떨어질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 역시 지양해야 할 고정관념이다. '나이'라는 숫자를 두고 세대 혹은 계파 갈등을 조장해서도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창의성과 아이디어로 끊임없이 혁신을 주도하는 고령의 리더도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국회의 존재 이유가 사회 발전과 질서를 위해 법과 규제, 제도를 만드는 것이라면, 여야를 막론하고 그 어떤 조직과 집단에 견줘도 뒤처지지 않은 '열린 사고'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통해 경제계와 정치권 간 간극을 좁히려는 자발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4차산업혁명시대에 '경제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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