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경영인 체제 강화하고 경영권 분쟁 차단 행보
[더팩트|이재빈 기자]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대표이사와 등기이사직을 내려놓기로 결정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사측은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을 위해 박찬구 회장이 물러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박찬구 회장이 조카인 박철완 전 금호석유화학 상무와의 경영권 분쟁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은 내달 15일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하고 새로운 사내이사 2명을 선임할 예정이다. 박찬구 회장과 신우성 사내이사가 사임의사를 밝히면서 공석을 메꾸기 위함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이사회 교체의 배경으로 전문경영인 체제와 거버넌스 개편을 제시했다. 오너일가가 이사회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이사회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박찬구 회장은 회사가 올해 사상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경영 기반이 견고해졌다고 판단했다"며 "스스로 등기이사 및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남으로써 각 부문의 전문경영인들을 이사회에 진출시켜 경영에 참여할 기회를 열어 주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박찬구 회장은 다른 계열사 대표이사직도 사임할 예정이다. 지난해말 기준 박찬구 회장이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계열사는 금호미쓰이화학과 금호폴리켐, 금호티앤엘 등이 있다. 다만 그룹 회장직은 유지할 계획이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박찬구 회장의 대표이사 사임을 통해 회사는 많은 변화의 가능성을 암시했다"며 "거버넌스 변화와 신사업 추진, 배당 추가 확대, 자사주 소각 등의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평가했다.
박찬구 회장의 사임 배경에 법무부를 상대로 진행 중인 취업 제한 소송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앞서 박찬구 회장은 2018년 배임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2019년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로 취임하자 법무부는 취업 제한을 통보했고 박찬구 회장은 소송으로 맞섰다. 앞서 1심 재판부는 법무부의 손을 들어줬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박찬구 회장의 취업제한 소송은 금호석유화학과 주주들 입장에서는 '불확실성 리스크'다. 최종판결이 나오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는데다 재판 결과에 따라 회사 경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초 박철완 전 상무도 경영권 분쟁 당시 이같은 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한 바 있다. 하지만 박찬구 회장이 사임의사를 밝힘에 따라 이같은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표이사 사임 표명이 경영권 분쟁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시각도 있다. 앞서 박철완 전 상무는 올해초 주주제안을 제출하면서 경영권 분쟁을 촉발, 지난 3월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박찬구 회장과 표대결을 벌였다. 표대결은 박찬구 회장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박철완 전 상무는 경영권 분쟁을 지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박찬구 회장이 사임의사를 밝히면서 박철완 전 상무가 경영권 분쟁을 제기할 명분을 하나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철완 전 상무는 박찬구 회장이 회사를 사유물처럼 다룬다고 비판해왔지만 오너일가가 이사회에서 자취를 감춤에 따라 이같은 명분을 내세울 수 없어지면서다.
박철완 전 상무는 고심이 깊어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1명이 선임됐고 내달 열리는 임시총회에서 2명의 사내이사이 추가로 선임될 경우 금호석유화학의 사내이사 3자리가 모두 신규로 선임되기 때문이다. 사내이사 임기는 3년인 만큼 박철완 전 상무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최소 3년 이상은 사내이사 진입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주주명부 폐쇄기간인 5월 20일까지 박철완 전 상무가 추가지분을 확보하고 주주제안을 통해 자신을 사내이사로 추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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