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재산 침해" vs "주거권이 먼저"…서울역 쪽방촌 개발 엇갈린 표정

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촌 개발 계획을 둘러싼 소유주와 쪽방 주민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사진은 동자동 인근 한 쪽방집 내부. /최승현 인턴기자

토지·건물 소유주, 거주민들 서울역 쪽방촌 개발 관련 의견서 제출

[더팩트ㅣ최승현 인턴기자] "사유재산 빼앗아 공공주택 만드는 게 공익이냐."(토지·건물주 일동)

"개발 이윤보다 주거권이 먼저다. 주민들은 공공개발을 환영한다."(쪽방촌 거주민 일동)

정부의 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촌 개발 계획을 두고 건물·토지 소유주와 거주민들의 입장이 갈리며 긴장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쪽방촌 내 건물과 토지 소유주들은 '재산권 침해'를 주장하며 정부의 개발 계획에 반대하는 반면, 거주민들은 열악한 주거 환경 개선 등 실거주자의 목소리가 반영된 공공주택 사업이 신속하게 추진돼야 한다는 견해다.

양측은 현재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담은 의견서를 용산구청에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동자동 초입에 토지·건물주 일동이 공공주택 사업을 비판한 내용의 현수막들이 걸려있다. /최승현 인턴기자

◆ 용산구청서 항의 시위 나선 쪽방촌 토지·건물주

쪽방촌 토지·건물주로 구성된 후암특별계획1구역(동자) 준비추진위원회(추진위)는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청 정문 앞에서 '정부의 기습 발표 및 강행'에 대한 항의 시위를 진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5일 서울역 쪽방촌에 대해 공공주도의 정비 계획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밝힌 공공주택 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동 시행하며 동자동 일대 4만7000㎡에 쪽방 주민의 재정착을 위한 공공주택 1450호(임대 1250호, 분양 200호), 민간분양주택 960호 등 총 2410호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내용이다.

정부 발표 후 추진위는 즉각 반대 의사를 표했다. 정부 계획이 발표되기 전부터 민간 주도 개발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번 계획과 관련해 사전에 어떠한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는 게 추진위 측의 설명이다. 추진위는 "토지·건물 소유주들은 민간의 일반적인 아파트를 원하지 정부의 공공임대주택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후암특계1구역 준비추진위원회가 19일 용산구청 정문에서 공공주택 사업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승현 인턴기자

용산구청에 따르면 소유주 중 실거주자는 우선공급권(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 비실거주자 중에서도 1가구 1주택자는 우선공급 대상자다. 다만 비실거주 다주택자의 경우에 우선공급권을 받기 위해선 입주자 모집 공고일 이전까지 여분의 주택을 처분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소유주들은 "명백한 사유재산 침해"라며 '정부안 완전 초기화'를 촉구하고 있다.

추진위는 "이곳은 충분히 '역세권'이라는 지리적 장점을 통해 고밀 개발하면, 노숙자 주민 등과 상생할 수 있는 도시 계획이 가능한 지역"이라며 "사실상 역세권의 사유 재산을 헐값에 사서 국가가 과도한 이익을 취득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추진위는 항의 시위와 더불어 용산구청에 '서울역 쪽방촌 개발 계획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추진위는 "정부의 기습 발표 후 2주 만에 반대 의견서 및 탄원서가 대량 접수됐다. 약 350필지, 610여 명의 소유주 중 70~80% 이상의 소유주들이 반대 의견을 냈다"며 "결사 항전으로 강제 수용 개발을 저지할 예정이다. 이 나라가 사유재산제와 민주주의 제도가 살아 있는 나라임을 입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구청 측은 "조정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쪽방촌 소유주들의 반발은 거세지는 모양새다. 최창훈 용산구 도시계획과 팀장은 "동자동 주민뿐만 아니라 소유주들의 의견을 모두 존중할 것"이라며 "국토교통부·LH 사이에서 조정하는 역할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오정자 추진위 위원장(오른쪽)이 19일 소유주들의 의견서들을 수합해 용산구청에 제출하고 있다. /최승현 인턴기자

◆ 쪽방 주민 "소유주 이해하지만 주거권이 먼저"

반면 쪽방 주민들은 정부의 공공주택 사업 결정에 환영하는 분위기다. 동자동 주민 자치단체 동자동사랑방과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는 지난 18일 오전 서울 용산 새꿈어린이공원에서 쪽방촌 공공주택 사업 실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동자동 자치단체들은 개발 계획 수립에 쪽방 주민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재산권 수호를 외치는 소유자들의 목소리가 집중되면서 공공주택 사업에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처럼 보도되고 있다"며 "정작 이곳에 살고 있는 거주민의 다수인 쪽방 주민들의 입장은 누구도 묻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자동 주민 자치단체들이 지난 18일 공공주택 사업에 찬성한다며 용산구 새꿈어린이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제공

특히, 쪽방 주민들은 공공주택 사업을 찬성하는 근거로 '열악한 주거 환경 개선'을 꼽는다. 공공주택 사업이 완성되면 쪽방 주민들은 월 3만7000원(보증금 183만 원) 수준의 저렴한 임대료로, 전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거주할 수 있다. 현재 쪽방 주민들은 2평 미만의 방에 약 24만 원 수준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으며, 단열·방음·난방 등이 취약하고 위생상태도 좋지 않은 환경에 놓여 있다. 화장실의 경우에도 대부분 공용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

김정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사업이사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쪽방 주민들은 라면 박스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며 "이제는 엄연히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유 재산을 강조하는 소유주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수십 년간 사람답게 살지 못한 우리의 입장도 이해해달라"고 설명했다.

동자동 자치단체들도 주민 342명의 서명과 함께 쪽방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의견서를 용산구청에 제출했다.

소유주와 거주민 양측 의견서를 모두 받은 정부가 향후 개발 사업을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용산구청은 서울역 쪽방촌 공공개발에 대한 의견 수렴을 이날 마무리했다. 최창훈 팀장은 "소유주, 쪽방 주민들의 의견들을 모두 수합해 국토교통부·LH 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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