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늘면서 집값 안정" vs "거래 늘면 집값도 뛰어"
[더팩트|이재빈 기자] 정부가 주택 양도소득세를 완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양도세 완화가 주택 매매거래량을 늘려 집값을 안정시킬 것이라는 분석과 다주택자가 불로소득을 대거 실현하고 집값 '폭탄돌리기'를 가속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상충하고 있다.
◆ 홍남기가 쏘아올린 작은 공…정부·여당 '양도세 인하' 거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다주택자가 매물을 출하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공급대책"이라며 "다주택자의 매물 출하 유도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홍 부총리의 발언을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양도세를 한시적으로 완화해 다주택자의 매물 출하를 유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여당 의원들도 양도세 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정책건의서를 통해 양도세 중과 유예나 한시적 감면 등 다주택자가 집을 팔 수 있는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당 김병욱 의원도 양도세 중과 시점인 오는 6월 1일 이전까지 매물을 출하하는 다주택자에 한해 양도세의 30~40%를 감면하는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7·10 대책을 통해 오는 6월 1일부터 단기 보유 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율을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7·10 대책은 2년 미만 단기 보유 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율을 1년 미만은 40%에서 70%로, 2년 미만은 기본세율(6~42%)에서 60%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2주택 10%p, 3주택 이상 20%p였던 중과세율을 2주택 20%p, 3주택 이상 30%p로 인상한다.
◆ 양도세 인하, 집값 잡을 수 있을까
'양도세 인하론'의 배경에는 주택 매매거래량이 늘어나면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는 분석이 깔려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아파트 거래량은 5305건으로 전년 동기(9611건) 대비 4306건 감소했다. 지난해 11월(6307건)보다는 1002건 감소한 수치다. 업계에서는 양도세가 지나치게 높다 보니 매물이 급감하는 '거래절벽'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거래는 급감했지만 집값은 상승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값은 전월 대비 0.28% 상승했다. 지난해 11월 변동폭 0.12% 대비 두배 이상 오른 수치다.
올해 입주물량이 평년 대비 적어 정부 입장에서도 다주택자 매물 출하를 노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올해 전국 입주 예정 아파트 물량은 27만3649가구로 2020년 36만2815가구보다 25% 가량 감소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정부 공급대책을 통한 공급물량 확대는 2023년에나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올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려면 다주택자에게 퇴로를 열어줘 이들이 여분의 주택을 시장에 내놓도록 유도해야 하는 셈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12월 들어 서울의 집값 상승폭이 확대된 배경 중에는 매물 감소로 인한 희소성 증가도 있다"며 "양도세 완화를 통해 다량의 매물이 출하되도록 유도하면 집값 안정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대부분의 다주택자가 이미 증여 등을 통해 절세 준비를 마친 상황에서 굳이 퇴로를 추가로 확보해줄 필요가 없다는 반박도 제기된다. 법원 등기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주택 증여 건수는 4만2446건으로 2019년(2만9072건) 대비 1만3374건 증가했다. 다주택자가 전방위 세제 압박을 피하기 위해 증여 등을 서두르면서 증여 건수가 급증한 것으로 풀이된다.
◆ 선긋기 나선 여당…양도세 인하가 집값 올린다는 지적도
논란이 일자 여당 지도부도 진화에 나섰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11일 "양도세 완화를 검토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생각이 없다"며 "홍 부총리의 발언도 양도세를 얘기한 것이 아닐 것"이라고 반박했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부동산 시장에 교란을 일으킬 발언은 자제돼야 한다"며 "양도세 관련 법안이 막 효과를 보려는 시점에서 양도세 완화론이 나오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이미 집값이 급등한 상황에서 양도세를 완화하면 다주택자가 실수요자에게 비싼 값에 주택을 넘겨 시세차익을 실현하게 될 것"이라며 "정책 일관성이 훼손됨은 물론 거품이 낀 집값의 하락 가능성이라는 리스크를 실수요자에게 전가하도록 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최 소장은 이어 "양도세를 완화해 거래량을 늘려야만 집값이 안정된다는 주장도 근거가 부족하다"며 "지난해 전국 주택 매매거래 총액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음에도 집값은 전혀 안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거래가 증가하면서 집값 상승이 전국으로 확대됐다고 봐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fuego@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