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 여전한 '유리천장'…한국투자증권, 10년째 여성임원 '0명'
[더팩트ㅣ박경현 기자] 연말 인사철을 맞아 증권가에서도 속속 정기 임원인사가 단행되고 있다. 국내 증권사에서는 남성직원의 임원 승진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최근 여성 임원의 비중이 늘어나는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이에 올해 말부터 이어지는 인사 이후 증권업계에도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될지 관심이 모인다.
13일 금융감독원에 공시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자기자본 3조 원 이상인 국내 대형증권사 5곳(미래에셋대우,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의 올해 3분기 기준 여성임원 숫자는 전체 임원 295명 중 14명(4.7%)에 그쳤다.
단순 인원별로 살펴보면 여성임원이 가장 많은 곳은 미래에셋대우다. 미래에셋대우는 올 3분기까지 전체임원 107명 중 7명을 여성임원으로 선임했다. 뒤를 이은 것은 삼성증권과 KB증권이다. 이들 증권사의 여성임원은 각각 31명 중 3명, 54명 중 3명이다.
비율 순으로 살펴보면 전체 임원 31명 가운데 3명의 여성임원을 선임한 삼성증권이 9.67%의 비율을 나타내 가장 높았다. 반면 한국투자증권은 사업보고서상 등재된 여성임원이 전체 48명 중 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NH투자증권은 55명 중 1명에 그쳤다.
증권가는 대체적으로 여성임원이 전무하거나 여성임원 선임에 소극적인 분위기다. 특히 여성임원수 0명을 나타낸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10년 가량 여성임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2010년 2월 말 박미경 상무가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10년째 사업보고서상 등재된 여성임원이 한명도 없다. 또한 NH투자증권과 하나금융투자 등도 1명에 그쳐 여성임원 선임 비율이 매우 낮다. 이 조차도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등의 사유로 여성 비율은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증권업계에서는 남성임원이 압도적으로 높은 분포율을 보이지만 최근에는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임원인사를 단행한 미래에셋대우에 이어 삼성증권, KB증권 역시 여성 임원을 늘려가는 추세다.
지난 9일 인사를 단행한 미래에셋대우의 승진자 목록에 따르면 지난해 임원직에 오른 남미옥 서울5지역본부장과 노정숙 결제본부장이 각각 상무보에서 상무로 승진하며 1년 만에 승진했다. 미래에셋대우는 올해까지 7명의 여성임원이 있었지만 이번 승진을 통해 보폭을 늘렸다.
KB증권의 경우 증권사 최초로 여성 대표인 박정림 대표를 임명한데 이어 올 초 여성 임원 2명을 선임하는 등 여성 임원 배치 기조를 확대하고 있다. 박정림 대표는 평소 남성 중심 조직 문화가 짙은 증권가에서 여성이 일하기 좋은 일터를 만들겠다고 강조해왔다. KB증권은 부점장급 이상 여성 리더 비율을 오는 2022년까지 20%로 확대한다고 밝힌 만큼 이번에 진행될 인사에서는 여성 임원이 현재보다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철저한 성과주의에 의해 인사가 판가름나는 증권업계 분위기상 여성직원이 임원까지 올라오기 어려운 다양한 요소가 존재하는 것으로 봤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여성의 경우 출산이나 육아로 인해 경력에 공백이 생길 가능성이 커 성과주의 조직문화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어려운 점이 있고, 특정 주요 업무에 남성을 선호하는 분위기 역시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미래에셋대우나 KB증권 등을 통해 최근 변화가 나타나고 있어 내년부터는 조금이나마 이런 분위기가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박현주 미래에셋대우 회장은 지난 2016년 대우증권과의 합병을 앞두고 "여성임원을 최대 10명 발탁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박 회장은 6명의 여성임원을 선임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여전히 보수적인 문화를 유지하는 증권사가 많지만 인사권을 가진 경영자들이 의지적인 행동을 보인다면 차츰 업계 문화가 개선될 것"이라며 "여성임원이 늘어나면 또 다른 여성후임을 끌어주는 등 조직 문화도 유연해 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pkh@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