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대기업 인사 키워드…'공통분모=성과주의·세대교체'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삼성과 SK, LG그룹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내년 경영 전략 수립을 위한 '첫 단추'인 2021년도 정기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매듭지었다.
그룹별 인사 시기나 규모는 조금씩 달랐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세대교체'와 '성과주의' 기조 속에 미래를 도모하는 데 방점을 뒀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4대 그룹 가운데 가장 늦게 내년 정기 인사를 매듭지은 곳은 삼성이다. 삼성전자는 3일과 4일 각각 정기 사장단 인사와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 이후 첫인사라는 점에서 관심이 쏠렸지만, '성과가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삼성 특유의 성과주의 기조는 고스란히 이어졌다.
삼성전자 정기 임원 인사에서 부사장 31명, 전무 55명, 상무 111명, 펠로우 1명, 마스터 16명 등 모두 214명이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지난해 전체 승진자 수(162명)와 비교해 52명 늘어난 수치다.
핵심 사업부문장 교체와 같은 '파격 인사'는 없었지만, 전년 대비 크게 개선된 실적을 반영해 지난 2017년(221명) 이후 3년 만에 최대 규모의 승진자를 배출했다. 특히, 이번 인사에서 부사장 승진자 명단에는 무려 31명이 이름을 올렸다. 나이와 연차에 상관없이 성과가 우수하고 성장 잠재력을 보유한 인재들을 과감히 발탁, 미래 최고경영자(CEO) 후보군을 두텁게 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사장단 인사에서도 삼성 특유의 '성과주의'는 뚜렷하게 드러났다. 코로나19 리스크 속에서 호실적을 이끈 이재승 CE(소비자가전)부문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며 사상 첫 생활가전 출신 사장 승진자를 탄생시켰다. 아울러 이 사장 외 4명의 신임 사장으로 50대를 전면 배치해 세대교체를 꾀하고, 외국인과 여성에 대한 승진 기회를 확대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인사와 관련해 "'홀로서기'에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인재경영' 철학이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대국민 기자회견에서도 '국적을 불문하고, 인재 영입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라며 "불확실성 속에 글로벌 기업 간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만큼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선제 대응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고 확보하는 데 인사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지난 3일 내년도 정기 임원인사 및 조직개편을 단행한 SK그룹의 경우 핵심 계열사인 SK텔레콤의 수장 박정호 사장을 SK하이닉스 부회장 승진자 명단에 올리며 눈길을 끌었다.
'ICT 전문가'인 박 부회장과 '반도체 전문가'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의 시너지를 통해 신성장동력 발굴에 속도를 높이는 등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하겠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 등 막중한 과제 해결을 위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내린 결단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나름의 파격 인사를 단행한 SK그룹 역시 세대교체 기조는 뚜렷했다. 특히, SK E&S의 경우 1974년생 추형욱 SK㈜ 투자1센터장을 소재 및 에너지 사업 확장 등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 신임 사장으로 선임했다. 임원에 선임한 지 3년 만에 사장 자리에 앉힌 것으로 연공과 무관하게 능력과 성과를 중시하는 그룹의 인사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아울러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내실을 다지기 위해 바이오와 소재, 배터리 등 신규 성장사업을 중심으로 성별과 나이 구분 없이 능력 있는 인재를 대거 승진자로 발탁했다.
SK그룹 관계자는 "각 회사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을 기반으로 고객과 투자자, 시장 등 이해관계자에게 미래 비전과 성장 전략을 제시하고 신뢰와 공감을 쌓는, 이른바 파이낸셜 스토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데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과 26일 이틀에 걸쳐 계열사별 정기 인사를 단행한 LG그룹은 '세대교체'에 방점을 뒀다. 삼성과 마찬가지로 핵심 사업 부문 최고경영자(CEO)들은 유임했지만, 임원급에서는 무려 177명이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23명은 나이와 성별, 경력의 구분 없이 분야별 전문성을 토대로 외부에서 중용했다. 아울러 전체 승진자 수의 과반을 차지하는 124명의 신임 상무를 선임, 현장 경험이 많고 추진력을 갖춘 인재를 곳곳에 전진 배치했다.
특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040 세대 신임 임원'을 발탁했다. 45세 이하 신규 임원은 25명으로 지난해 대비 4명 늘었고, 1980년대생 신임 임원 3명을 배출했다. 여기에 LG그룹은 전무 승진자 4명을 비롯해 신규 임원 선임 11명 등 역대 최다인 15명의 여성 임원이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미래 신성장 사업 경쟁력 제고에 초점을 맞춘 '맞춤형 인재' 영입도 눈에 띈다. LG화학을 전신으로 연내 출범을 앞둔 '글로벌 1위 전기자 배터리 제조사'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12명의 신임 임원을 발탁했다.
LG그룹 관계자는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한 생산·품질·영업 등 분야의 경우 나이, 성별 구분 없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인재를 중용했다"고 설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그룹별 공을 들이는 핵심 사업 분야는 다르지만,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선제 대응 능력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경쟁력"이라며 "젊어진 그룹 총수들이 '인재 경영'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만큼 앞으로 주요 그룹의 세대교체 기조는 더욱 짙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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