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부회장 승진…SKT와 SK하이닉스 함께 이끈다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믿을맨'으로 꼽힌 박정호 SK텔레콤(SKT) 사장의 역할이 커졌다. 그룹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SK하이닉스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경영 성과를 인정받는 동시에 그룹 내 입지를 더욱더 공고히 한 것.
박정호 부회장이 내년부터 SKT와 함께 SK하이닉스의 사업적 변화를 주도하게 된 만큼 반도체 분야에서의 신성장 동력 발굴 및 그룹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추진하는 SKT 중간지주사 전환 작업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2021년 임원인사를 통해 SKT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박정호 사장이 SK하이닉스 부회장직을 겸한다고 3일 발표했다. 박정호 부회장은 그룹의 하이닉스 인수를 주도한 인물로, M&A 해결사이자 ICT 전문가로 꼽힌다. 2016년부터 SKT를 이끌고 있으며, 지난해부터는 SK하이닉스 이사회 의장을 맡아왔다.
통신사인 SKT 대표이사와 반도체 회사인 SK하이닉스 부회장으로 경영을 동시에 수행하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이다.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결정으로, 박정호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기존 자리를 지킨다. 업계는 SK하이닉스가 '이석희 체제'를 이어가되 박정호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미래 먹거리 발굴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K그룹은 "ICT 전문가인 박정호 부회장과 인텔 출신의 반도체 전문가인 이석희 사장의 시너지가 주목된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구체적으로 박정호 부회장은 SKT와 SK하이닉스의 변화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박정호 부회장은 SKT를 통신사가 아닌 '빅테크' 기업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에 나선다. 이번 SKT 임원인사 및 조직개편에서는 기존 핵심 기술을 담당하고 있는 조직들을 인공지능(AI) 중심으로 재편했다. 추후 '텔레콤'을 떼고 신사업을 강조하는 방식의 사명 변경에도 나설 예정이다. 박정호 부회장은 "핵심 사업과 프로덕트를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했으며, AI가 모든 사업의 기반 플랫폼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에서는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는 일을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에는 SKT를 비롯한 ICT 관련 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한 시너지 창출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박정호 부회장은) 융복합화가 심화되는 ICT 산업에서 반도체와 통신을 아우르는 SK ICT 패밀리 리더십을 발휘해 다양한 시너지를 창출하는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인사를 기점으로 그룹 차원에서 추진해 온 SKT의 중간지주사 전환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SK그룹은 SKT를 그룹 내 ICT 계열사를 총괄하는 중간지주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사의 손자회사가 M&A에 나설 경우 피인수 기업 지분 100%를 보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SKT의 자회사이자 그룹 지주사인 SK㈜의 손자회사다. SKT가 중간지주사로 전환되면 SK하이닉스의 지위는 기존 손자회사에서 자회사로 바뀌면서 M&A의 발목을 잡았던 지분 확보 부담을 덜게 된다. 시장에서는 SKT가 물적분할을 통해 중간지주사로 전환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공정경제 3법' 역시 중간지주사 작업의 가속화 시나리오에 설득력을 더한다. 현재 국회에는 새로 설립된 지주사가 자회사를 소유할 경우 확보 지분을 기존 20%에서 30%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상정 중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SK하이닉스 지분 20.1%를 보유 중인 SKT는 10%에 달하는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데, 그 규모만 수조 원에 달한다. 중간지주사 전환 작업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 구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만큼 박정호 부회장이 그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박정호 부회장은 주력 계열사인 SKT와 SK하이닉스 두 곳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DNA를 심는 작업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최태원 회장은 ESG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글로벌 모범 기업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러한 최태원 회장의 의중을 최대한 반영해 'ESG 경영 실행력'을 높일 인물로는 박정호 부회장이 1순위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SK그룹은 박정호 부회장 승진 건을 포함한 사장단 인사와 관련해 "각 회사가 ESG 경영을 기반으로 고객, 투자자, 시장 등 이해관계자에게 미래 비전과 성장 전략을 제시하고 신뢰와 공감을 쌓는 이른바 파이낸셜 스토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데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이번 임원인사 결과가 ESG 경영과 파이낸셜 스토리 추진을 가속화하려는 목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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