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별세] '스마트폰서 반도체까지' 초일류 삼성 만든 선구안

25일 별세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74년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었으며, 이후 6년 만에 삼성전자를 글로벌 1위 기업으로 만들었다. /삼성 제공

"현재 아닌 미래 봐야"…'반도체·스마트폰' 시장서 삼성전자 1위로 올려

[더팩트│최수진 기자] "언제까지 미국, 일본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습니까?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지요. 제 사재를 보태겠습니다."

25일 별세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87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후 장기적 관점에서의 기술 개발 및 과감한 투자 등에 나섰다. 특히, 그의 남다른 선구안은 휴대전화(스마트폰)와 반도체 사업에서 결실을 보며 삼성을 지금의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 화형식으로 증명한 휴대전화 품질…'애니콜'서 '갤럭시'로 이어진 삼성의 뚝심

전 세계가 인정하는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품질은 이 회장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이건희 회장은 과거 삼성전자의 영향력이 미미했던 휴대전화 시장에서 고객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과감한 결단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일화가 1995년 3월 일어난 '애니콜 화형식'이다.

당시 삼성전자의 무선전화기 사업부는 품질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완제품 생산을 추진하다 제품 불량률이 무려 11.8%까지 올라가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 이후에도 이런 나쁜 물건을 만들고, 엉터리 물건을 파는 정신은 무엇인가? 적자 내고 고객으로부터 인심 잃고 악평을 받으면서 이런 사업을 왜 하는가? 삼성에서 수준 미달의 제품을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 회사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강하게 질타했다.

1995년 1월 이건희 회장은 품질 사고 대책과 향후 계획을 점검하면서 고객들에게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무조건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수거된 제품을 소각함으로써 임직원들의 불량의식도 함께 불태울 것을 제안했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품질은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삼성 제공

15만 대, 150여억 원어치의 제품이 수거됐고 화형식을 통해 전량 폐기 처분됐다.

그 결과, 애니콜은 그해 8월 전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였던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라섰다. 한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로 남았다.

이후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 휴대전화 사업을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2002년 나온 '이건희 폰(모델명 SGH-T100, SCH-X430)'은 TFT-LCD(박막액정 표시장치) 패널, 31만 화소 내장 카메라, 동영상 촬영 지원 등을 내세우며 업계 최고 스펙으로 출시됐다. SGH-T100 모델은 국내 최초로 판매량 1000만 대를 기록하며 '텐밀리언셀러폰'으로 등극했다.

판매량 1000만 대 신화는 2004년 나온 '벤츠폰(모델명 SGH-E700)'으로 이어졌다. 벤츠폰은 당시 해외에서 '휴대폰 계의 메르세데스 벤츠'라고 불리는 등 극찬을 받았다.

이후에도 △블루블랙폰 △울트라에디션폰 △SGH-E250 △SGH-D900 등이 판매량 1000만 대를 돌파하며 '휴대전화는 삼성'이라는 독보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됐다.

그러나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선보이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하자 삼성전자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에 이건희 회장은 2010년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해 가장 먼저 휴대전화 사업을 챙겼다. 당시 이 회장은 갤럭시S의 판매량을 100만 대로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품질 강화를 주문했다. 그해 삼성전자가 내놓은 첫 스마트폰 '갤럭시S'는 2500만 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글로벌 시장에서 다시 한번 인정받게 됐다.

'양'보다 '품질'을 우선시 해야 한다는 이건희 회장의 지론은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온 현재도 삼성전자가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신조다. 이는 삼성전자가 지금까지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며,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강국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삼성 제공

◆ 반도체, '맨땅에 헤딩'으로 얻은 '세계 1위' 영광

이건희 회장의 선구안은 '반도체' 시장에서도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끌어올렸다.

1974년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산업이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에 부합하며, 한국과 세계 경제의 미래에 필수적인 산업이라 판단해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반도체사업에 착수했다.

이건희 회장이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TV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면서,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 일본보다 20, 30년 뒤처졌는데, 따라가기나 하겠는가?' 등의 반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일본의 한 기업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기업을 키우려면 미래에 대한 투자를 진행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반도체 사업을 강행했고, 1986년 7월 1메가 D램을 처음 생산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2004년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30년 기념식에서 "반도체 사업 진출 당시, 우리 기업이 살아남을 길은 머리를 쓰는 하이테크 산업 밖에 없다고 생각해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지 약 6년 만에 세계 1위로 올라섰다.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며, 메모리 강국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이건희 회장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이후 △1998년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준공 △2005년 화성 반도체 2단지 본격 투자 등에 나서며 반도체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높였다.

아울러, 기술 격차에도 집중했다. 2001년 세계 최초 4기가 D램 개발, 세계 최초 64Gb NAND Flash 개발(2007), 2010년 세계 최초 30나노급 4기가 D램 개발과 양산, 2012년 세계 최초 20나노급 4기가 D램 양산 등에도 성공했다.

이건희 회장의 끊임없는 투자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에서 1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됐다. 삼성전자는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하고 있으며, 2018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jinny0618@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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