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후된 시장환경·국내 완성차 제조사 '역차별' 개선 목소리 높아져
[더팩트 | 서재근 기자] 국내 중고차 시장 규모가 날로 커지는 가운데 업계 안팎에서 "규모에 걸맞은 시장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완성차 제조사들의 시장 진입 문제를 두고 기존 중고차 업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시장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반대 견해를 굽히지 않고 있지만, '생존권 보호'를 내세운 이 같은 주장과 달리 국내 중고차 시장은 올해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커지는 시장 규모와 달리 허위·불량 매물과 성능·상태 조작 등 열악한 시장 환경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소비자들의 안심할 수 있는 시장 구조 개선이 서둘러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올해 중고차 거래대수 신기록 경신 '유력'
23일 자동차 판매 분석 업체 카이즈유 등 업계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국내 중고차 거래대수는 사업자 간 거래 건수를 제외하고 195만712대로 집계됐다. 이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 2016년(257만89대)과 비교해 61만9377대가량 적은 수치로 4분기까지 더하면 올해 역대 최고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올해 들어 중고차 거래대수 증가세는 매우 가파르다. 올해 3분기의 경우 지난해 동기 대비 10%의 증가율을 기록, 상반기 상승률(전년 대비 3.4%↑)의 3배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개인 간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거래대수의 과반인 103만5708대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거래 상당수가 중고차 매매업자가 매수인과 매도인을 중개해 거래를 성사시킨 후 세금 회피 등을 목적으로 개인 간 직거래로 위장해 이전 등록한 사례라고 내다보고 있다. 위장거래 건수를 매매업자 거래에 포함할 경우 국내 전체 거래대수의 80% 이상이 사업자 거래라는 것이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국내 중고차 시장은 경영난을 호소하는 매매업계의 주장과 달리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라며 "중고차 거래가 비교적 투명한 미국과 독일의 경우 개인 간 직거래 비중이 30% 수준이다.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는 만큼 지금처럼 불투명하고 후진적인 거래행태에서 벗어나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중고차를 거래할 수 있는 시장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완성차업체들의 시장 진입 장벽을 허물어 업체 간 건전한 경쟁과 유통 구조 선진화를 유도한다면, 국내 중고차시장 규모가 더욱 커지는 '메기효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연간 '24조' 빅마켓…소비자 신뢰 '바닥'
국내 중고차 시장 규모는 지난해 245만 대로 같은 기간 178만 대가 판매된 신차시장을 넘어섰다. 중고차 1대당 평균 매매가격을 1000만 원으로 가정했을 때 연간 시장규모는 무려 24조 원에 달한다.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불투명한 가격 설정과 허위 매물 등 소비자 피해 사례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최근까지 접수된 중고자동차 중개·매매 관련 불만 상담건수는 모두 2만1662건이다.
연간 기록을 살펴보면 2014년 1만2875건, 2015년 1만1800건, 2016년 1만1058건, 2017년 1만392건 등 매년 1만 건 이상의 불만이 접수되고 있다.
반면 중고차 시장을 국가 주요 산업으로 육성한 미국과 독일 등 다수 유럽 국가에서는 완성차업체의 시장 진출을 통해 신차 수준의 품질·서비스를 확대, 소비자 신뢰 제고는 물론 시장 외연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PSA그룹의 경우 지난해 5월 푸조 오케이션과 시트로엥 셀렉션, 오펠 셀렉션 등 그룹 내 8개 인증 중고차 브랜드를 '스포티카'라는 단일 브랜드로 통합, 유럽시장에서 2021년까지 인증 중고차 판매 목표를 연간 100만 대로 제시했다. 이외에도 BMW의 '프리미엄 셀렉션', 벤츠 '융에 슈테르네', 폭스바겐 '다스 벨트 아우토', 도요타 '플러스' 등 다수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이미 별도의 인증 중고차 브랜드를 내세워 일반 중고차와 다른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제조사별 차이는 있지만, 인증 중고차 브랜드를 운영하는 업체들은 통상 '보유기간 5년 또는 주행거리 10만km 미만'의 무사고 차량을 매입, 자체 성능·상태 점검과 수리 등의 상품화를 거친 '제조사 인증 중고차(CPO)'를 소비자들에게 판매한다.
또 다른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독일의 중고차시장이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완성차업체 등이 시장에 참여, 중고차의 품질과 서비스를 신차수준으로 제공하는 등 시장 전체적인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시장 환경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중고차시장은 시장규모는 커졌지만, 후진적인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며 "현대차 역시 지난해 9월 유럽 시장에 별도 인증 중고차 통합 브랜드를 출시했지만, 국내에서는 법에 가로막혀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 (중고차) 유통 채널 다변화에 나서지 않는다면 '레몬마켓'이라는 꼬리표는 떼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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