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매각 결렬…HDC현산, 속으로 웃는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이 결국 무산됐다. 사진은 정몽규 HDC그룹 회장 /더팩트 DB

전례 비춰볼 때 계약금 2500억 원 반환소송 승산 있어

[더팩트|윤정원 기자] 지난 11일 금호산업의 계약해지 통보로 아시아나항공 매각협상은 최종 결렬됐지만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에 대한 시장평가는 나쁘지 않다. 계약금 2500억 원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전이 불가피한 가운데 한화그룹-대우조선해양 인수무산 사례로 비춰볼 때 승산이 있다는 평가다.

작년 11월 HDC현산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면서부터 시작된 아시아나항공 매각협상이 10개월 만에 무산된 가장 큰 배경은 코로나19 확산이다. 코로나19가 일파만파 번지면서 항공업계 전반에 불어 닥친 불황 한파는 HDC현산의 자신감을 재고하게 했다.

앞서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이후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지난해 11월 12일 자진해 기자회견을 열고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정몽규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HDC그룹이) 종합모빌리티 그룹으로 한걸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우리 힘(자금)만으로도 충분히 인수가 가능했지만 박현주 미래에셋대우 회장의 안목과 인사이트를 받고 싶어서 함께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몽규 회장의 자신감은 높은 베팅금액에서도 확인됐다. 당시 업계에는 HDC현산-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써낸 입찰가가 경쟁사였던 애경그룹보다 1조 원가량 높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HDC현산의 상승가도에 찬물을 끼얹었다. 코로나19로 항공업계의 업황이 수직급락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사정도 더욱 악화된 것이다. 올해 6월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는 12조8405억 원에 달한다. HDC현산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이후에만 2500억 원의 부채가 늘었다.

항공업황이 나빠지면서 HDC현산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오히려 기업가치 상승에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실제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획 발표 이후 지주사인 HDC와 HDC현산의 주가는 꾸준히 하향했다.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하면서 시장의 평가는 더욱 냉혹해졌다. 급기야 "기업결합이 순항하고 있다"는 HDC현산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HDC와 HDC현산은 지난 3월 19일 각각 6800원, 1만2000원의 주가를 기록, 최근 1년 래 가장 낮은 가격을 찍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HDC에서 4월 아시아나항공 주식 인수를 무기한 연기하면서 주가가 오히려 상승했다는 점이다.

시장의 냉랭한 평가 속 현산이 내놓은 카드는 '재실사 요구'였다. 현산이 재실사 요구를 처음 이야기한 7월 이후 현산과 금호산업, 채권단의 협상 줄다리기는 계약해지를 염두에 둔 방향으로 이어졌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과 정몽규 회장이 모처에서 만나는 등의 노력이 있었지만 양측의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HDC현대산업개발과 금호산업 간 협상이 불발되면서 아시아나항공은 6년 만에 다시 채권단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선화 기자

결국 협상 결렬로 흘러왔지만 사실 HDC현산에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우선,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과 계열사들이 지고 있는 막대한 부실을 떠안지 않을 수 있게 됐다. 금호산업의 계약해지 통보 직후 기간산업안정기금 운용심의회는 회의를 열고 아시아나항공에 자금지원을 결정했다. 지원규모는 2조4000억 원이다.

이외에도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등에서 아시아나항공에 투입한 공적자금만 현재까지 총 3조3000억 원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이번 지원 규모가 아시아나항공의 위기를 반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계약금 반환 소송도 전례를 살펴보면 불리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앞서 2008년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계약을 파기한 이후 계약금반환소송에서 일부 승소하는 성과를 얻었다. 9년에 걸친 소송 결과 서울고법은 파기환송심에서 산업은행이 한화그룹에 계약금 3150억 원 중 1260억 원과 지연이자를 돌려줘야 한다고 결정했다.

당시 한화는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조선업황이 악화하면서 수주계약 중도해지가 발생하는 등 대우조선해양의 갑작스러운 자산손실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노조반대로 확인실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도 덧붙였다.

HDC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전도 코로나19라는 외부요인으로 업황이 악화됐다는 데서 한화-대우조산해양 사례와 공통점을 지닌다. 여기에 지난달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기내식 부당지원 혐의로 공정위원회로부터 32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는 등 계열사의 부정행위가 있었던 점도 HDC현산 입장에서는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대목이다. "금호산업이 재실사 요구를 거부하는 이면에는 추가부실 가능성을 숨기기 위한 의도가 있을 수 있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셈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현산의 입장에서는 코로나 발생 이후 가치가 급격히 떨어진 항공업계 상황에 이전에 제시한 금액을 그대로 지불할 의사가 없었을 것"이라면서 "(이번 계약해지로) 불확실성을 제거한 데다 반환소송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현산 입장에서는 금호산업의 재실사 요구 거부와 계약해지 통보가 내심 반가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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