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2일 기자회견 이후로 공식석상에 나서지 않아
[더팩트|윤정원 기자]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이 사실상 결렬됐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공언했던 '모빌리티(Mobility) 그룹으로의 도약'이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 2일 이메일을 통해 12주간의 재실사를 요구하는 입장을 KDB산업은행 등 아시아나 채권단에 전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 등 아시아나항공 채권단과 금호산업은 현대산업개발에 대한 계약 해지 통보를 다음 주로 미룬 상태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지난 4월 이후 HDC현대산업개발의 모든 행동은 결국 인수의지도 없으면서 딜(deal) 무산의 귀책사유를 채권단과 금호산업에 돌리기 위한 작업이 됐다"며 "금호산업과 계약해지 통보와 관련해 계속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금호산업은 지난해 11월 12일 이사회를 열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당시 금호산업은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정상화를 달성하고 중장기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인수 후보로 꼽혔다"고 설명했다.
정몽규 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날 오후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간담회에서 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HDC가 모빌리티 그룹으로 한걸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강력한 인수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경제가 좋지 않은데 왜 인수를 추진하느냐고 하지만 경제가 어려울 때가 오히려 기회다. 위기일 때 오히려 상당히 좋은 기업을 인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당시 정 회장이 모빌리티 그룹으로의 변신을 꾀한 건 부친인 고(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못 다 이룬 꿈을 실현하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 다수였다. 정세영 회장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으로 현대자동차와 '포니' 신화를 일으킨 장본인, 이른바 '포니 정'이다. 하지만 정세영 회장은 정주영 회장이 정몽구 현(現)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줌에 따라 32년간 몸담았던 자동차 사업에서 손을 떼고 현대산업개발로 밀려났다.
'항공도 모빌리티'라는 생각하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심했던 정몽규 회장이지만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아시아나항공의 급격한 재무구조 악화는 끝내 버텨내지 못 했다. 앞서 지난 4월 초 현대산업개발이 예정됐던 아시아나항공 유상증자를 연기한 데 이어 4월 말 주식 취득일까지 무기한 연기하자 인수 이상 증세는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금호산업과 채권단의 거듭되는 대면 협상 요청에도 현대산업개발은 회피하는 모양새를 연출했고, 이어 6월 인수 조건 재검토, 7월 재실사 요구 등만을 내세웠다. 지난달 20일 권순호 현대산업개발 사장과 서재환 금호산업 사장의 대면 협상도 서로의 입장차를 확인하는 자리에 그쳤다. 같은 달 26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정몽규 회장의 최종 담판도 성과를 내지 못 했다. 이동걸 회장의 '1조 원 할인'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에도 정몽규 회장은 재실사 입장만을 고수하며 결국 '노딜'을 예고했다.
계약 무산이 확실시되면 2500억 원에 달하는 이행보증금을 둘러싼 소송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현산과 미래에셋 컨소시엄은 총 2조5000억 원에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로 금호산업 및 아시아나항공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총 인수대금의 10%를 이행보증금으로 냈다.
garde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