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변호인단 "검찰, 처음부터 기소 목표로 수사"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삼성이 40개월여 만에 또다시 총수의 '사법 리스크'라는 최악의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지난 6월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 이후 두 달 동안 장고를 이어갔던 검찰이 결국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기약 없는 법정 공방을 벌여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
검찰 스스로 개혁 의지를 밝히며 도입한 수사심의위원회의(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까지 무시하며 이와 역행하는 판단을 내리자 경제계 안팎에서는 "검찰 스스로 개혁 의지를 꺾은 것"이라며 우려 섞인 평가가 나온다.
1일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이 부회장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비율 산정 및 삼성바이오의 회계 변경 등 일련의 모든 과정이 삼성그룹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승계작업을 위한 밑그림으로 그룹 총수를 보좌하는 미래전략실(미전실) 주도 아래 불공정하게 이뤄졌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그러나 검찰의 이번 수사를 바라보는 안팎의 시선은 수사 초기부터 곱지 않았다. 검찰은 수사 초기 지난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 방식이 분식회계에 해당하는지, 즉 회사 가치를 산정하는 과정에서의 적법성 시비를 가리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수사 초점을 '삼성 승계'로 옮겼다.
검찰은 앞서 이 부회장의 1, 2심에서 이미 다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비율 산정 문제를 또다시 쟁점화했다. 이 부회장이 23.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의 회계 장부를 고의로 조작했다고 봤다.
검찰 측의 주장에 재계는 물론 회계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기업가치를 평가·산정하는 과정은 형법상 유무죄를 가늠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더욱이 앞서 진행된 이 부회장 재판에서 특검 측이 제기했던 '삼성 승계' 시나리오를 다시 꺼내 들자 일각에서는 "애초부터 검찰의 삼성바이오 수사 목적과 방향이 이재용 부회장을 향하고 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1년 8개월여 동안 삼성을 대상으로 50여 차례에 달하는 압수수색과 430여 회에 달하는 관련인 소환 조사에 나섰음에도 이 부회장은 물론 삼성바이오 가치를 부풀린 장본인으로 지목한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에게 청구한 구속영장이 '증거 부재'를 이유로 모두 기각된 것 역시 '유죄 프레임'에 대한 의심의 시선을 키웠다.
매끄럽지 못한 수사 과정 역시 도마에 올랐다. 최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외부 의견 청취'라는 목적으로 경영·회계 전문가들 소환, 참고인 조사를 진행했다. 소환 요청을 받은 일부 학계 관계자들은 사실상 검찰이 기소내용과 배치되는 의견을 낸 전문가들에게 추궁과 압박을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지난 7월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로부터 의견을 청취하기 위한 조사에 응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사실을 공개하면서 "삼성바이오 사태에 대해 심의위원회가 압도적으로 수사 중단을 결정했는데 삼바 사태가 분식회계가 아니라는 글을 썼거나 발표했던 교수들을 (검찰이) 부르고 있다"며 "들리는 바로는 의견을 듣는 것이 아니라 왜 삼성을 위해 이런 의견을 냈냐는 식의 질문으로 하루 종일 잡아둔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검찰이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및 수사 중단 권고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을 두고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지난 6월 이 부회장 측은 검찰의 기소가 타당한 것인지 여부를 따져봐 달라며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서를 제출했다. 수사심의위는 검찰 스스로 권력 남용의 부작용과 폐해를 없애겠다며 검찰 수사 결과의 적법성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 지난 2018년 도입된 제도다.
같은 달 수사심의위는 10대 3의 의견으로 이 부회장이 연루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검찰에 권고했지만, 검찰은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검찰의 결정으로 수사심의위는 유명무실해진 것이나 다름없다"라며 "여러 차례 영장 기각과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과반을 훨씬 넘는 격차로 불기소 (수사심의위의) 권고가 내려졌음에도 밀어붙이기식 기소를 강행한 것은 사실상 답을 정해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찰의 기소 결정 전부터 재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수사심의위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6월 권성동 무소속 의원은 SNS를 통해 "(수사심의위는) 원래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지난 2018년 1월 문재인 정부 하에서 문무일 검찰총장 때 처음 만든 것"이라며 "수사를 통제하고 검찰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수사심의위와 같은 제도는 필요하고, 이곳에서 내린 결론에 대해서는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같은 달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일부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 부회장의 기소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모든 과정과 어떤 일은 그 과정에 있어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수사심의위가) 그 과정을 선택했다면,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 측 변호인단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전문가를 포함한 일반 국민들로 구성된 수사심위위에서도 제3자 입장에서 수사팀과 변호인의 주장 및 증거를 면밀하게 살펴본 뒤 10대 3이라는 압도적 다수로 이 사건에 불기소 권고를 내린 것"이라며 "이는 곧 국민의 판단이며 국민들의 뜻에 어긋나고, 사법부의 합리적 판단마저 무시한 기소는 법적 형평에 반할 뿐만 아니라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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