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 4억9922만 원…"이마저도 매물 없어"
[더팩트|윤정원 기자] 서울 동작구 흑석동 전용면적 50㎡ 구축 빌라에 전세로 거주 중인 박 모 씨(33)는 최근 2년여 만난 여자친구와 결혼을 결심했다. 전세계약이 오는 12월 말 만료되기 때문에 하루빨리 전세 아파트를 구한 뒤 먼저 입주할 공산이다. 하지만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기도 했거니와 소형 평형 전세 매물은 거의 자취를 감춘다시피 해 박 씨는 크게 애를 먹고 있다. 본인과 예비신부의 근무지를 고려하면 서울 권역을 벗어나기 힘든 상황. 박 씨는 현재 거주 중인 빌라의 계약을 갱신하고 한동안 신혼생활을 이곳에서 하며 시간을 갖고 아파트 전세를 찾을지, 아니면 아파트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신혼생활 첫 거주지로 더 넓은 평형의 빌라를 찾아 나설지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최근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무섭다. 서울 아파트 전세금은 지난주까지 59주 연속 상승하며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감정원이 지난 13일 발표한 '8월 2주 주간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8월 둘째 주(10일 기준) 서울의 주간 아파트 전셋값은 0.14% 상승했다. 전세 공급이 급격히 줄고 있는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의 전셋값은 지난 주 0.22% 급등했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5억 원에 달한다. KB국민은행 '월간 주택가격동향'에 의하면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4억9922만 원으로, 2년 전인 2018년 7월(4억5046만 원) 대비 4876만 원(10.8%) 올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4억2619만 원)과 비교하면 3년 2개월 새 7303만 원(17.1%) 상승했다. 지난달 서울 강남(한강 이남) 지역 아파트 전셋값은 5억8484만 원으로, 2017년 5월(4억9022만 원)보다 9462억 원 올랐다. 3년 2개월 새 1억 원 가까이 뛴 셈이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세는 임대차법 시행의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정부는 새 임대차법을 통해 임차인에게 4년 거주를 보장하고, 계약 갱신 시 임대료 인상률을 5% 이내로 묶기로 했다. 이로 인해 집주인들은 신규 계약에서 전셋값을 올리기로 가닥을 잡았고, 아파트 전셋값은 오름세를 지속하는 형국이다. 집주인들 사이에서는 '반전세' 바람도 거세졌다. 다주택자 보유세, 양도세 등 부담이 커지면서 반전세나 월세로 세금 인상분을 충당하려는 의도다.
아파트 전세가격이 연일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진즉 아파트 욕심을 버리는 모습도 감지된다. 지난 6·17 부동산 대책에서 정부는 규제지역의 3억 원 이상 아파트에 대해 전세자금 대출을 제한했으나 다세대·연립주택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거주 중인 장 모 씨(34)는 "지금이야 애가 어리니 괜찮지만 계속 좁은 빌라를 못 벗어나는 것 아닌지 걱정이 많다. 남편은 무리하면서까지 아파트로 이사하지 말자고 하지만 옮기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사는 박 모 씨(31)는 "신혼집이 서울 권역 아파트면 성공한 인생 아닌가. 재벌을 만날 일도 없고 이번 생은 글렀다"고 토로했다.
실제 최근 아파트보다 가격이 저렴한 다세대·연립주택으로 매수세는 몰리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다세대·연립주택 매매 건수는 총 7005건으로, 2008년 4월(7686건)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다세대·연립주택 매매량이 7000건을 넘긴 건 12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올해 다세대·연립주택 매매는 1∼5월 △3840건 △4800건 △3609건 △461건 △4665건으로 5000건을 밑돌았으나 6월 6328건으로 크게 증가한 뒤 지난달 7000건도 넘겼다. 7월 계약분은 신고기한(30일)이 아직 열흘 이상 남아 있어 지난달 매매 건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매수세가 늘면서 아파트에 뒤이어 다세대·연립주택 가격도 오름세를 나타내는 분위기다. 지난달 서울 빌라의 평균 전셋값은 1억7981만 원이다. 지난해 1년 동안 1억7500만 원대에서 거의 변동이 없다가 올해 들어 403만 원 뛰었다. 송파구 삼전동 월드컵파크빌 전용면적 68.41㎡의 경우 지난달 3일 4억1000만 원(5층)에 거래된 뒤 같은 달 23일 4억5300만 원(3층)에 매매됐다. 은평구 증산동 한신빌라 전용면적 48.96㎡는 지난달 15일 3억9000만 원(3층)에 손바뀜이 이뤄진 데 이어 지난달 24일 5억500만 원(2층)에 거래됐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소재 S공인중개업체 관계자는 "소형평형 아파트 전세 매물은 상당히 귀해서 나오면 곧장 나간다. 집을 둘러보기 전에 계약금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새 젊은 직장인들은 거의 빌라를 찾는데 빌라도 전세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주차 가능한 5층짜리 신축 빌라 하나는 (전용면적) 50㎡가 7억 5000만 원에 선에 나와 있다"고 설명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저금리에 풍부한 유동자금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없는 다세대·연립, 원룸, 오피스텔 등에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도 오르는 것"이라며 "이들 주택에는 상대적으로 취약 계층이 임대차로도 많이 거주하는 만큼 추가 대책이 필요한지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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