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준병 "전세는 소멸되는 운명…자연스러운 현상"
[더팩트|윤정원 기자] '전세의 월세로의 전환'을 두고 여야 의원 간 대립이 팽팽한 가운데 국민들 사이에서도 전월세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전세와 월세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는 견해도 일부 나오지만, 대다수 국민은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것은 나쁜 현상이 아니다'라는 여당 의원의 발언에 공분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 "저는 임차인입니다" 윤희숙 '신드롬'
앞서 논쟁의 물꼬는 미래통합당에서 텄다.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 단상에 오른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은 "저는 임차인입니다"라는 서두로 '임대차 3법 반대' 연설을 시작했다. 윤희숙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로 가득 찬 의석을 바라보며 "제가 지난 5월 이사를 했다. 이사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집주인이 2년 있다가 나가라고 그러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달고 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법안 표결을 보면서 든 생각은 '4년 있다가 꼼짝없이 월세로 들어가게 되는구나'였다. 이제 더 이상 전세는 없겠구나, 그게 제 고민"이라고 언급했다.
윤 의원의 발언은 이튿날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임대차 3법으로 잔뜩 예민해진 민심을 제대로 저격한 영향이었다. 윤 의원의 연설 관련 기사와 영상에는 "소름 돋을 정도로 명쾌한 연설이다. 이렇게 나라가 혼란스럽고 위태로울 때 이런 분이 계셔서 그래도 마음이 놓입니다", "손을 떨면서 한 발언은 듣는 이들에게 감동과 눈물이 나게 한다. 때 묻지 않은 임차인과 임대인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국민에게 전해 준다", "경제학자로서 경제의 본질을 보는 눈이 정확하다"는 등 칭찬일색의 댓글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임대차 3법 관련 개정안은 세입자가 전월세 계약을 한 차례 갱신할 수 있도록 하고, 법으로 보장하는 계약 기간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했다. 또 전월세 인상 폭을 5%로 제한하되 각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그 안에서 상한을 정하도록 했다.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것은 지난달 27일, 법안 시행일은 31일이다. 5일 만에 초고속으로 처리된 해당 법안을 둘러싸고 국민의 호소와 토로는 줄을 이은 바 있다. 상당수의 국민이 '4년 후 전세가격 폭등', '월세시대 도래' 등을 우려했다.
◆ 윤준병 "의식수준 개발시대 수준…전세는 소멸될 운명"
임대차 3법을 '속전속결'로 처리한 더불어민주당 측에 이른바 '윤희숙 신드롬'은 껄끄러울 수 있는 대목이었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윤희숙 의원의 발언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윤준병 의원은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희숙 의원의 연설을 언급하는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것이 나쁜 현상인가요'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글에서 윤준병 의원은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것은 나쁜 현상이며, 임대계약기간을 기존 2년에서 2년 추가 연장하면 전세가 월세로 전환될 것이라는 취지의 미래통합당 의원 5분 발언이 인터넷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것이 나쁜 현상이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운을 뗐다.
그는 글을 통해 "전세는 우리나라에서 운영되는 독특한 제도이지만, 소득 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운명을 지닌 제도"라며 "전세 제도가 소멸되는 것을 아쉬워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의식수준이 과거 개발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은행의 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한 사람도 대출금의 이자를 은행에 월세로 지불하는 월세입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전세로 거주하시는 분도 전세금의 금리에 해당하는 월세를 집주인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개인은 기관과의 경쟁에서 지기 때문에 결국 전 국민이 기관(은행)에 월세를 지불하는 시대가 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목돈 마련이 어려운 서민들에게는 전세보다 월세를 통해 주택을 마련하는 것이 쉽다는 이야기도 덧댔다.
윤 의원의 페이스북에는 이내 수백개의 댓글이 달렸다. 관련 기사 댓글과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윤 의원이 서울 종로구 구기동 연립주택과 마포구 공덕동 오피스텔을 소유한 2주택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윤 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내 집을 갖고 은행 이자를 내는 것과 영영 집 없이 월세 내는 게 어떻게 같은가", " 전세는 빚 갚고 나면 자기 돈이 된다. 월세는 따박따박 내고 나면 사라진다", "월세를 은행 이율만큼만 받는 집주인을 보신 적이 있나" 등의 비난이 쇄도했다.
◆ "월세가 전세보다 쉽다?…부동산 모르는 소리"
잇단 논란을 의식한 탓이었을까. 윤준병 의원은 3일 새벽 본인의 게시글 대댓글을 통해 "많은 분들이 저에게 월세를 살아보라고 충고하셨다. 저는 집을 투기나 투자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아파트 투기 없이 30년 넘게 북한산 자락의 연립주택에서 실거주 목적으로 살아왔다"며 "지금은 월세도 살고 있다. 월세 생활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본인 역시 월세살이 중인 임차인이라는 설명이었다. 실제 윤 의원은 지역구인 전북 정읍·고창 활동을 위해 인근 '영무예다음' 아파트에서 지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국민들은 월세라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만들어 놓고 한가하게 '실천'을 운운한다는 데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서울 다주택자가 지역구 사무실을 사용하면서 월세살이 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다. 댓글 상당수가 "정읍에서 2룸 아파트 월세가 (보증금) 500~1000에 20~30 정도 하던데 그걸로 월세 생활 '몸소 실천' 운운하는 건 설마 아니겠죠", "연봉 1억대 다주택자의 비겁한 변명 잘 들었다", "월세 포함된 세비에서 월세 낸다고 자랑하는 건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 먹으라는 건가" 등 윤 의원의 탁상공론을 꼬집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윤 의원이) 목돈을 마련하지 못한 저금리 시대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월세가 전세보다 손쉬운 주택 임차방법일 수 있다고 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현재 정부는 연소득 5000만 원 이하 세대주, 청년 중소기업 근로자 등에게 이율 1~2%대 저금리 전세자금 대출을 제공하고 있다. 서민층일수록 전세가 월세보다 부담이 적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 의원의 발언은) 국민들이 체감하는 전월세 부동산을 전혀 직시하지 못 했다"고 지적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당장 서민들이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봐야한다. 월세가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 없지만 월세 지출만큼 삶의 질이 줄어드는 저소득층에는 월세가 당연히 나쁘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차 3법은 전세 물량을 없애거나 월세 전환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당장은 세입자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몇 년 뒤 전세 제도가 소멸되는 데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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