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경영시계 멈추지 않았지만…재계 "사법 리스크 부담 여전"
[더팩트 | 서재근 기자]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에 관한 소명이 부족하다."(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총수 부재'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게 된 삼성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다.
◆ 구속 필요성 소명 못 한 검찰 '무리한 수사' 지적 불가피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부장판사는 9일 오전 2시쯤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사장)에 대해 자본시장법위반(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행위) 및 주식회사등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영장 기각 사유와 관련해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법원의 결정으로 검찰은 '무리한 수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향한 재계 안팎의 회의적인 시선은 영장실질심사 전부터 끊이지 않았다. (2020년 6월 8일 자 <이재용 영장심사 '정당성' 화두···재계 "구속 사유 없어"> 기사 내용 참조)
특히, 지난 4일 이 부회장 측이 검찰의 기소가 타당한 것인지 여부를 따져봐 달라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서를 제출한 지 이틀 만에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를 감행하자 일각에서는 "검찰 스스로 권력 남용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마련한 장치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는 쓴소리가 이어졌다.
더욱이 삼성은 물론 각계에서 "이 부회장의 경우 불분명한 주거지,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 등 형사소송법상 구속의 사유에 해당하는 요인이 없다"며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과연 정당한지를 두고도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사실상 2년 가까이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을 타깃으로 수십, 수백여 차례에 걸쳐 압수수색과 관련인 소환 조사까지 한 검찰이 '증거인멸'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 자체가 설득력이 없었다"라며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대 사안을 두고 '일단 (구속영장 청구를) 하고 보자'는 식의 수사 방식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 삼성 "최악 면했지만, 사법 리스크 부담 여전"
지난 2017년 사상 초유의 '총수 구속' 사태에 빠졌던 경험이 있던 삼성은 이날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에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는 분위기다.
이날 법원의 결정에 따라 자칫 과거의 악몽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었던 만큼 '리더의 부재' 우려를 덜었다는 안도의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당시 2018년 2월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관련 2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석방될 때까지 삼성의 경영 시계는 사실상 완전히 멈춰 섰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경영복귀 이후 삼성의 변화는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 특히,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대믹 여파에서도 이 부회장의 광폭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파운드리 분야 세계 1위'를 목표로 초격차 전략 수립에 나선 이 부회장은 지난달 21일 극자외선(EUV) 기반 최첨단 제품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자 평택캠퍼스에 업계 추산 10조 원 규모의 파운드리 생산시설 구축에 나섰다고 밝힌 데 이어 지난 2일에는 8조 원 규모의 낸드플래시 생산라인 구축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지난달 초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이후 고공농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와 합의하고 주요 계열사 사장단이 '건전한 노사관계'에 대한 외부강사의 강연을 청취하는 등 노사 문화 개선 및 시민사회와 소통 등 내부 체질개선 작업에도 탄력이 붙었다.
다만, 삼성 안팎에서는 구속영장 기각으로 이 부회장의 대내외 행보에 '빨간불'이 켜지지는 않았지만, '사법 리스크'는 여전히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도 있는 데다 '불구속 기소'에 나설 경우 이 부회장은 또다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현지 생산시설 점검 및 해외 출장 등 대내외 행보에 직접적인 제약이 사라졌다는 점은 삼성으로서도 안도할 만한 일"이라며 "회사의 양적, 질적 성장과 대대적인 체질 개선 의지를 확고하게 드러낸 이 부회장의 리더십을 기반으로 한 삼성의 변화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지난 2016년 국정 농단 의혹을 기점으로 '사법 리스크'가 삼성의 원활한 경영활동에 발목을 잡은 지도 햇수로만 5년째"라며 "여전히 검찰의 기소 가능성은 열려 있는 만큼 삼성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는 부담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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