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이럴 거면 수사심의위원회 제도 왜 만들었나"
[더팩트 | 서재근 기자] 검찰이 4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을 두고 재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이 부회장 측이 검찰에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한 지 하루 만에 영장이 청구되자 재계에서는 경제계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 섞인 반응과 더불어 삼성을 향한 검찰의 일련의 수사가 사실상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한 것 아니냐는 쓴소리도 나온다.
4일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이날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사장)에 대해 자본시장법위반(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행위) 및 주식회사등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이 부회장 등에 유리한 합병비율을 끌어내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가치를 부풀렸고, 이에 삼성물산 주주들이 손해를 봤다는 것이 검찰 측의 판단이다.
특히, 검찰의 이날 영장 청구는 전날 이 부회장 측이 검찰의 기소가 타당한 것인지 여부를 따져봐 달라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서를 제출한 지 하루 만에 이뤄졌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검찰 수사 결과의 적법성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 지난 2018년 도입된 제도다.
재계에서는 검찰의 이날 구속영장 청구 결정과 관련해 "사실상 검찰 스스로 권력 남용의 부작용과 폐해를 덜기 위해 마련된 장치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5대 그룹 고위 관계자는 "검찰이 문제 제기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은 재계는 물론 학계와 법조계에서도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사안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검찰은 영장 청구를 강행했다"라며 "과연 수사 대상이 '삼성'이라는 대기업 총수가 아니었다면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을 감수해가면서까지 무리하게 일을 추진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이례적으로 삼성이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음에도 하루 만에 이를 묵살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의 태도는 '피의자는 이의제기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며 "'수사의 절차 및 결과에 대한 국민 신뢰 제고'라는 제도 도입 취지 자체를 부정한 영장 청구는 무리한 수사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라고 덧붙였다.
삼성 측 변호인단 역시 유감을 감추지 못했다. 변호인단은 "수사가 사실상 종결된 시점에서, 이 부회장 등은 검찰이 구성하고 있는 범죄혐의를 도저히 수긍할 수 없어 국민의 시각에서 수사의 계속 여부 및 기소 여부를 심의해 달라고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 심의신청을 접수하였던 것"이라며 "전문가의 검토와 국민의 시각에서 객관적 판단을 받아 보고자 소망하는 정당한 권리를 무력화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미중 무역분쟁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검찰의 영장 청구가 나라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검찰이 '이재용 구속 영장 청구'라는 결론을 정해두고 수사를 진행한 것이 아니라면 이런 결정을 내렸을지 묻고싶다"라며 "전례 없는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 도주 우려도 없는 기업 총수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검찰의 밀어붙이기식 수사는 이 부회장 개인과 삼성이라는 개별 대기업의 원활한 경영활동에 제동을 거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총수 체제'를 기반으로 두는 다수 국내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맹목적인 '반대기업 정서'를 확산시키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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