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문턱 낮추고 경제계 소통 창구 넓혀야
[더팩트 | 서재근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1대 국회의원선거(총선)가 마침내 끝났다. 압승을 이끌어낸 여당이나 참패를 면치 못한 야당 모두 '민심의 무서움'을 알았다고 입을 모은다. 진심으로 민심을 읽었다면 나라 국정 운영을 총괄하는 새 국회가 신경 써야 할 최우선 과제는 무엇일까. 의심의 여지 없이 '경제'다.
집권 여당이 전체 300석 가운데 180석, 과반을 차지한 거대 여당의 출범을 자축할 여유조차 없는 상황이다. 오늘날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는 각종 지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경제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2%로 내려 잡았다. 이 같은 예측이 현실화할 경우 우리나라는 지난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무려 22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최근 몇 개월 사이 삼성과 현대자동차, SK, LG 등 국내 주요 그룹 시총은 수십조 원이 증발했고,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부터 다수 기업의 영업이익은 반 토막이 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들의 주력 계열사가 글로벌 주요 거점마다 세운 생산기지는 코로나19 여파로 잇달아 셧다운에 돌입했다. 특히, 국내 제조업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완성차 업계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요절벽에 맞닥뜨렸고, 항공업계는 주요 항공사마다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물론 이 같은 위기가 온전히 현 정부의 국정 운영에 원인이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정부·여당이 취한 대(對)기업 스탠스를 돌이켜보면, 이번 총선 결과를 바라보는 재계의 시선이 '기대'보다 '우려'에 가까운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3년여의 시간 동안 '반기업'과 '친노동' 중심의 정책 기조를 유지했던 정부·여당과 경제계 사이에 경제 상황을 바라보는 온도 차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틈은 더 커진 듯하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큰 틀 아래 정부가 최저임금인상, 주 52시간 근무제도 등 기업의 경영환경과 괴리가 있는 정책을 강행하는 것에 따른 부작용은 온전히 기업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지난 2월 청와대에서 치러진 문재인 대통령과 주요 기업인 간 간담회 당시 "내수진작 차원에서 저녁 회식도 활성화했으면 하는데, 주 52시간에 저촉될지의 우려를 해결해 주었으면 한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건의 내용이 화제를 모았다.
재계 서열 1위 총수조차 효용 범위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경제 관련 법안들이 국회 문턱을 넘어가는 동안 경제계가 요구한 각종 규제개혁 관련 입법은 허공의 메아리로 사라졌다. 오죽하면 입법 촉구를 위해 20대 국회 문턱을 16회 차례나 넘은 국내 대표 경제단체장이 답답함에 눈물을 보였겠는가.
21대 국회는 달라야 한다. 총선 당일(15일) 주요 경제단체가 일제히 논평을 내고 "기업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한 데는 앞서 새 국회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앞서 20대 국회에서 단절된 소통에 대한 한탄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자리 창출'도 '통 큰 투자'도 기업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가능한 일이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전 세계 지역 사회에 수백억 원의 지원금을 내놓고, 정부 차원의 공적 마스크 공급 확대에 동참하기 위해 마스크 수십만 개를 지원하는 대기업들의 노고도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국민의 선택으로 탄생한 새 국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벼랑 끝에 선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뿐이다. 앞선 국회에서 높여 놓은 문턱을 낮추고, 소통의 창구를 넓혀 지난 3년 동안 자취를 감춘 규제개혁 법안처리 등 입법적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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