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먹고사는 일주 관련된 분야입니다. 한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면 국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지요. [TF비즈토크]는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경제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모여 한 주간 흥미로운 취재 뒷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만든 코너입니다. 우리 경제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건들을 들여다보기 위해 현장을 누비고 있는 <더팩트> 성강현·최승진·장병문·서재근·황원영·이성락·이진하·윤정원·이한림·최수진·정소양·이민주·한예주·박경현 기자가 나섰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미처 기사에 담지 못한 경제계 취재 뒷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신한 조용병·우리 손태승, 주총서 연임…'찻잔 속 태풍' 국민연금 '반대'
[더팩트ㅣ정리=이한림 기자] -지난주에는 각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주총)가 잇달아 열린 '슈퍼 주총 위크'였습니다. 올해 기업들의 주총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문화 확산으로 직접 참석한 주주의 수가 비교적 적어 한산한 분위기가 연출됐지만, 사전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한 주주가 늘어나며 관심도 만큼은 높았습니다.
-이중에서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연합이 충돌한 한진칼 주총에 이목이 쏠렸는데요. 양측이 한진가(家) 경영권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해 관심을 모은 만큼 한진칼 주주들은 코로나19 여파에도 직접 참석해 주총장을 가득 메웠지요. 또 금융권과 유통업계의 주총 뒷이야기와 경영난을 겪으며 1조 원 대출을 받은 두산중공업에 대한 우려까지 차례로 취재 뒷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8시간 넘긴 릴레이 표 대결'에 지쳐버린 한진칼 주주들
-한진칼 주총은 오너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올해 주총 시즌 최대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 조원태 회장의 승리로 끝났지만 주총장에서는 9시간 마라톤 회의에 지친 주주들의 성토가 쏟아졌다고 하던데, 현장 목소리를 자세히 들어보겠습니다.
-지난 27일 서울 소공동 한진빌딩 강당에서 열린 한진칼 제7기 정기 주주총회는 조원태 회장의 사내 이사 재선임 안건을 놓고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 '반(反) 조원태 3자 연합' 간의 치열한 표 대결이 예고돼 있었는데요. 주총장에는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기 위해 200여 명의 주주가 모였죠. 코로나19 확산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총장 내부는 가득 찼습니다. 이번 경영권 분쟁에 대한 주주들의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었죠.
-총 발행주식의 84.93% 의결권을 보유한 주주가 직·간접적으로 참석했습니다. 다만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은 물론 강성부 KCGI 대표, 권홍사 반도그룹 회장 등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주총 진행 과정에서 주주들이 크게 화를 냈다고 하던데요.
-맞습니다. 사실 문제는 주총 시작 이전부터 발생했는데요. 주총은 예상보다 3시간가량 늦어진 정오께 시작됐습니다. 현 경영진과 3자연합 양측이 확보한 위임장의 중복 여부를 서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신경전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주주 위임장 사전 확인 절차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면서 주주들이 자리에 앉아 3시간 동안 마냥 기다려야 했습니다. 심지어 기다림에 지친 일부 주주는 발길을 돌리기도 했죠.
-문제는 이날 안건이 29개에 달했다는 점인데요. 주총 최대 관심사였던 조원태 회장의 사내이사 안건에 대한 표결은 오후 3시 30분쯤에야 이뤄졌습니다.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주주들은 "이렇게 인질처럼 잡혀 있는 게 말이 되느냐", "오후에 생업이 있다. 빠르게 좀 진행해달라"고 불만을 제기했죠.
-그렇군요. 안건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너무 더디게 진행된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사실 주총을 진행한 한진칼 입장에서는 여러 안건을 신속히 처리하고 싶었을 텐데요. 하지만 반대 측인 '반(反) 조원태 3자 연합' 대리인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 신중할 수밖에 없었죠. 대리인들은 개별 안건 대부분에 문제를 제기하며 조원태 회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의 교체 필요성을 설명했습니다.
-3자 연합 측 대리인과 주주들의 마찰이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기다림에 지친 주주가 3자 연합 측의 질문과 지적이 이어지자 "시간 좀 끌지 말아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에 한진칼 주총 의장인 석태수 대표이사는 진땀을 뺐죠. 석태수 대표이사는 "저희도 빨리 진행하고 싶지만, 반대 의견(3자 연합)이 있는 상태에서 표결 및 집계 절차를 정확하고 신중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주총은 언제쯤 끝났나요?
-오후 5시 40분까지 진행됐는데요. 주총 시작 8시간을 넘기자 주총장에는 한숨 소리가 이어졌고, 주주들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연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습니다. 약 9시간 동안 이뤄진 릴레이 표 대결을 통해 모든 주주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향후 다시 한번 이러한 주총을 겪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그들의 표정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 이변 없던 금융권 주총…국민연금 '반대'는 찻잔 속 태풍
-이번에는 금융권 소식을 들어볼까요. 금융권 정기주총의 최대 이슈는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여부였죠. 두 회장 모두 연임에 성공했는데요.
-네. 지난 26일 조용병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안이 신한금융 정기 주총에서 가결됐습니다. 앞서 25일 손태승 회장도 무난히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사내이사 선임안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다고 예고해 주총 판을 흔들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국민연금은 조용병 회장과 손태승 회장 모두 기업가치 훼손과 주주권익 침해 이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주총에서 사내이사 선임의 건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국민연금은 신한금융의 지분 9.38%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입니다. 또한 우리금융의 2대주주로, 지분 7.71% 보유하고 있습니다.
-신한금융과 우리금융의 최대주주·2대주주인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두 회장이 연임에 성공한 것이네요.
-그렇습니다. 주총 전 업계는 이미 국민연금의 표심과는 상관없이 두 회장의 연임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역시 이변도 없었고요.
신한금융의 경우 재일교포 주주 지분(15%)과 우리사주(6.58%), BNP파리바(3.55%) 등 우호 지분이 25% 이상으로, 조용병 회장의 재선임 안건을 무난하게 통과시켰습니다. 우리금융 역시 단일 최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17.25%)를 비롯해 과점주주(29.7%)와 우리사주조합(6.42%) 등이 손태승 회장의 연임에 찬성했습니다.
-그렇군요.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지적의 목소리도 나온다는데요.
-그렇습니다. 주주가치 제고라는 스튜어드십코드의 본질은 간과하고 도덕적·자의적 잣대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조용병 회장의 경우 경영 실적만 놓고 보면 연임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민연금의 경영권 간섭에 대한 시장의 우려 목소리도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미 금융사들의 경우 금융당국에 규제를 받는데, 국민연금의 경영권 간섭이 강해질 경우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정부의 입맛에 따라 기업의 경영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에는 국민연금의 반대표가 찻잔 속 태풍에 불과했지만, 앞으로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것이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겠네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논란을 종식하기 위해선 결국 정부로부터의 독립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 "배당 줄면 임원 보수도 줄여야죠" 주주 요구에 롯데쇼핑 '진땀'
-이번 주 주요 유통업체들의 정기 주총이 몰리면서 이른바 '슈퍼 주총 위크'라는 별칭이 붙었죠.
-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하는 가운데 국내 주요 유통업체들은 '마스크 주총'을 치렀습니다. 코로나19로 예년에 비해 주총 참석자가 줄긴 했지만 대부분의 업체는 큰 문제 없이 주총을 넘겼습니다. 그런 중에 지난해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기록한 롯데쇼핑의 주총에서는 조금 다른 상황이 연출됐죠.
-논란이 될 만한 안건이라도 있었던 건가요. 주주들이 반발한 안건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묻는 내용이 주를 이뤘습니다. 실적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안이 상정될 때마다 주주들의 질의가 쏟아졌죠. 1호 안건인 재무제표 승인 건에 대한 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의장을 호명하는 주주들의 외침이 이어졌고요.
-주주들은 특히 롯데쇼핑의 배당금 축소에 대한 불만을 표했습니다. 한 소액주주는 의장인 강희태 롯데쇼핑 대표이사를 향해 "야"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요.
-사업 목적에 주택건설사업을 포함하는 2호 안건도 그냥은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태도였는데요. 경제성, 수익성을 따져 결정한 사안인지를 꼬집는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사내이사 및 사외이사 선임과 이사 보수 한도 승인의 건도 상정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반대는 없었나요?
-이사 선임에 대해서는 주주들도 큰 이견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사 보수 한도 승인의 건과 관련해서는 임원 보수 한도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네? 보수 한도에 대한 승인의 건은 통상적으로 별 무리 없이 통과되는 안건이 아닌가요.
-그렇습니다만 이날은 달랐습니다. 이날 한 주주는 "주주들이 가져가는 배당금이 줄어든 만큼 임원의 보수 한도도 25%까지는 아니더라도 10% 정도는 줄어드는 게 형평성에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강희태 대표는 "지난해에도 이사 보수 한도(110억 원)의 50% 이하로 집행했다"며 "올해도 말씀을 잘 참고해서 이사 보수에 대한 부분도 적절히 조절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올해 실적 개선을 촉구하는 주주들의 목소리도 이어졌고요. 주주 김모 씨는 "나 같은 주주들은 주가나 배당금이 중요하지 보수 한도는 관심이 없다"며 "올해 좀 열심히 일해 달라.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노력을 해달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랬군요. 실적 부진이 주주들의 불만으로 이어진 분위기네요. 대규모 구조조정 등 롯데쇼핑이 올해 실적 개선을 위한 방안을 추진 중인만큼 성과를 내고 이것이 또 주주들의 배당금 인상으로 이어져야겠습니다.
◆ '1조 긴급수혈' 두산중공업, 근본적 해결책 아니다
-마지막으로 주총이 아닌 다른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자금난에 시달리는 두산중공업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신규 자금 1조 원 규모의 자금을 긴급 지원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발전 시장의 사업 구조가 변화하지 않으면 두산중공업은 또다시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네, 두산중공업은 지난 26일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과 1조 원 규모의 차입신청 및 계약체결을 위한 이사회를 개최했다고 공시했습니다. 다음날 정부는 대기업 금융지원 방안을 논의하면서 두산중공업에 대해 1조 원의 신규 단기 자금 지원을 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두산중공업은 정부로부터 신규 자금을 지원받게 됨에 따라 올해까지 유동성 압박에서 벗어나게 됐습니다.
-두산중공업과 자회사가 빌린 돈은 총 5조9000억 원(지난해 말 기준)입니다. 당장 내달 갚아야 할 회사채는 6000억 원이며 5월에는 5000억 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까지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단 1조 원대 대출을 통해 급한 불은 끈 셈입니다.
-두산중공업이 대출로 유동성 위기를 넘어갔지만 근본적으로 시장이 바뀌지 않으면 또다시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석탄·원자력 등 발전 부분 비중이 높은 두산중공업은 현 정부의 탈원전·친환경 발전 정책으로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앞서 두산중공업은 신한울3·4호기와 석탄화력발전소 등의 건설을 준비해 왔습니다. 하지만 정권교체와 함께 발전소 프로젝트가 취소되면서 수주 가뭄을 겪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정권 교체 전에 추진했던 사업은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만, 정부는 검토하지 않고 있죠.
-두산중공업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두산중공업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대규모 임원 감축과 순환 휴직, 45세 이상 직원 대상 명예퇴직 등 자구책을 시행 중입니다. 지금까지 직원 650명이 명예퇴직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일부 인력의 휴업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회사는 휴업 대상 직원에게 임금 70%를 지급한다는 입장이지만 노조는 반발하고 있습니다.
-두산중공업은 해외시장 영업 강화와 사업 다각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한다는 계획입니다. 올해 두산중공업은 중동과 동남아시아에서 2조 원대 규모의 해수담수화와 석탄화력발전소 프로젝트 수주를 노리고 있습니다. 아울러 가스터빈 국산화와 원자력발전소 해체 등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두산중공업이 자금 수혈로 위급한 상황은 넘겼지만 수익원 다변화 등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시급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