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위상 추락한 '하기사건' 장본인, 또 경영권 분쟁 '촉발'
[더팩트 | 서재근 기자] "가슴에 국기를 달고 라운드를 하는 것은 부담과 동시에 자부심이고, 너무 큰 영광이다."
지난 2015년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데뷔 9시즌 만에 '명예의 전당' 입성을 확정 지은 박인비 선수가 다음 해 열린 브라질 리우데자이네루 올림픽 골프 여자부 1라운드를 마치고 전 세계 취재진에게 가장 먼저 밝힌 소감이다.
각종 메인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며 '골프 여제'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박인비 선수에게도 '국가대표'라는 자리는 큰 산처럼 느껴지는, 어깨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큰 자리'였다. 그 대상을 한 개인에서 기업으로 바꾼다 하더라도, 글로벌 시장에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각 분야 대표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대한항공은 항공운수 사업 분야에서 '대한민국'을 넘어 명실상부한 글로벌 항공사 대열에 올랐다. 이런 상징성을 품은 대한항공을 핵심 계열사로 두고 있는 한진그룹이 최근 총수 일가 경영권 분쟁으로 시끄럽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대 회장 체제 이후 2세, 3세 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면서 성장통을 겪은 대기업은 많았지만, 이번 한진 사태는 그 배경을 살펴보면 아쉬움이 더 크다.
특히, 분쟁의 당사자가 전 세계 항공업계에서 전례 없는 '승무원 하기(下機) 사건'을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움을 넘어 허탈하기까지 하다.
지난 2014년 12월 12일.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서울 강서구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 출두한 조 전 부사장이 처음으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사과한 날이다. 당시 조 전 부사장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라며 논란의 책임을 지고 대표이사를 포함한 모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4년 후인 지난 2018년에는 해외에서 구매한 개인 물품을 관세를 내지 않고 국내로 몰래 들여온 혐의로 인천본부세관에 출석한 그는 또 한 번 "죄송하다"라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국민들의 공분은 물론 사명감으로 근무하는 수백 수천여 명의 임직원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그가 이제는 '경영권'을 두고 집안싸움에 불을 지폈다. 최근 조 전 부사장은 행동주의펀드인 KCGI, 반도건설과 3자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오는 3월로 예정된 한진칼 주총에서 전면전을 예고했다.
'선대회장의 유훈'까지 언급하며 사실상 현(現) 한진그룹 '조원태 체제'의 해체를 요구하는 조 전 부사장 측이 내세운 근거는 '경영 위기'다. 경영방식의 혁신, 재무구조의 개선 및 경영 효율화를 통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사실상 그룹 경영권이 본인의 손으로 넘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45년이라는 세월 동안 항공운송업계를 이끌었던 선대회장 등 일가를 '갑질 논란'으로 한 달에 한 번꼴로 포토라인에 세운 장본인이 '선대회장의 유훈'을 언급할 자격이 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회사 주주들의 권익을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아이러니 그 자체다. 'NO 재팬' 여파를 수습할 겨를도 없이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항공업계는 최악의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원군 역할에 매진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를 때다.
책임이 수반되지 않은 주장은 억지이자 생떼일 뿐이다. 최고의 위치에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았던 박인비 선수만큼의 책임감은 아니더라도 스스로 흘린 눈물을 '악어의 눈물'로 만드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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