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파기환송심] 수포 된 특검 '삼바 카드'…기 싸움 균형 깨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4차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서울고법=김세정 기자

이재용 파기환송심 "특검 측 삼성바이오 자료, 양형 측면서 필요 없어"

[더팩트 | 서울고법=서재근·이성락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하 특검)과 삼성 측 변호인단 양측 간 팽팽했던 기 싸움의 균형이 깨졌다.

재판부가 특검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증거자료에 관해 증거로 채택하지 않기로 하면서 '부정한 청탁'의 성립을 가중적 양형 사유로 내세운 특검 측 전략에 수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17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이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네 번째 공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을 앞두고 안팎의 관심은 특검이 제기한 삼성바이오 수사 자료의 증거채택 여부와 삼성이 최근 신설을 공언한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법위) 운영 가이드라인이 재판부의 양형 판단에 미칠 영향에 쏠렸다.

특히, 삼성바이오 이슈의 경우 삼성과 특검 양측이 파기환송심 첫 재판 때부터 첨예한 견해차를 보였던 사안이다.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의 2심 당시 1심 재판부가 유죄의 근거로 본 '뇌물'의 성격을 '자발적' 혹은 '능동적'이 아닌 '수동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왔다.

이번 파기환송심에서는 "유무죄 판단을 달리 다투지 않겠다"며 오로지 양형에 관한 변론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삼성(이재용 부회장)이 청와대의 강요와 협박에 따른 피해자'라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었다.

반면, 특검은 사건의 본질을 달리 봤다. 삼성과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관계를 '정경 유착'으로 간주하고, 삼성의 승계작업이 뇌물의 대가이자 유착 관계의 '연결고리'라는 게 특검 측의 주장이다.

이날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승계작업에서 이뤄진 각각의 현안과 대가관계는 입증할 필요가 없고, 추가 증거조사도 사실 인정이나 양형 측면에서 모두 필요하지 않다며 특검이 제출한 삼성바이오 수사 관련 자료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더팩트 DB

이미 특검은 앞선 재판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순환출자고리 해소 등 개별 현안에 관해 삼성 측과 공방을 벌인 바 있다. 때문에 파기환송심을 앞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앞서 다뤄지지 않았던 새로운 개별 현안인 삼성바이오 이슈가 새로운 증거로써 활용돼야 특검이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렸다.

그러나 이날 재판부는 "승계작업에서 이뤄진 각각의 현안과 대가관계는 입증할 필요가 없는 데다 추가 증거조사도 사실 인정이나 양형 측면에서 모두 필요하지 않다"며 특검이 제출한 삼성바이오 수사 관련 자료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이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논란은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심리 쟁점이 아니다"라는 삼성 측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삼성 측은 파기환송심 첫 재판 때부터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을 존중하는 만큼 본 재판에서 유무죄 판단을 달리 다투지 않고, 오로지 양형에 관한 변론에 집중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미 대법원이 '포괄적 승계' 존재를 인정한 만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과 마필 구매비 등을 뇌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를 두고 공방을 벌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특검이 꺼낸 '삼성바이오 카드'가 수포로 돌아간 가운데 재판부는 삼성이 제시한 준법위 활동 가이드라인에 관해서는 '실효적 운영'을 전제로 양형을 판가름하는데 반영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삼성은 이날 준법위 설립과 권한, 향후 활동 계획 등을 재판부에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 준법경영 이행과 위법 재발 방지에 대한 삼성의 의지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앞서 삼성은 지난 9일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준법위의 출범을 알렸다. 이르면 다음 달 초 출범이 예상되는 준법위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화재 등 주요 계열사의 준법경영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삼성이 이날 제시한 준법위 활동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실효적 운영을 전제로 양형을 판가름하는데 반영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더팩트 DB

준법위는 재판부 요구에 삼성이 응하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재판부는 지난 3차 공판에서 "향후 정치 권력자로부터 똑같은 요구를 받으면 뇌물을 공여할 것인지, 기업이 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을 다음 기일 전에 제시해달라"고 했다. 이는 재판부가 유무죄 판단과 처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치유의 역할을 하는 '치료적 사법'을 고려한 요구로 풀이됐다.

재판부는 '실효성'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준법위가 실질적으로 운영돼야만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며 "준법위 활동의 실효성을 점검하는 전문심리위원을 구성해 실태를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 중에서 삼성의 (준법) 약속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분들이 있다"며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과 삼성의 약속이 제대로 시행되는지 엄격하고 철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날 재판부의 발언이 삼성에 유리한 요소로 작용할지 섣부른 판단을 할 수 없다"라면서 "그러나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피고인에게 과제를 제시했다는 점, 이 부회장의 형을 정하는 데 준법위 활동 내용을 반영하겠다며 조건으로 '실효적 운영'을 제시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양형을 판가름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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