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강화에 이사해임 요구 가능성
[더팩트 | 이한림 기자] 계열사 9곳에서 이사직을 맡아 과다 겸직 논란이 있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건설 사내이사 임기가 1년 여 남았지만 자진 사임한 가운데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이자 16년 째 사내이사를 맡아 온 롯데케미칼 사내이사직도 내려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12월 31일부로 롯데건설 사내이사에서 물러났다. 임기는 내년 3월까지이지만 이른 사임이 결정됐다. 신 회장은 지난 2017년 3월부터 롯데건설 사내이사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후 당해년도 10억2500만 원, 2018년 6억800만 원의 보수를 수령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신동빈 회장이 이처럼 고액의 연봉을 뒤로하고 롯데건설 사내이사에서 물러난 것에 대해 국정농단 사건 연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사임했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또 신 회장은 다른 재계 총수와 달리 여러 계열사에서 이사직을 겸하고 있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어렵다는 '과다겸직' 논란을 2015년부터 지속적으로 받아 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사임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기준 그룹 내 계열사 및 관계사 9곳에서 이사직을 수행해 왔다. 롯데건설 사내이사 사임 후에는 롯데지주, 롯데케미칼, 롯데제과, 롯데쇼핑, 롯데호텔, 롯데칠성음료,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 에프알엘코리아 등 8곳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다.
특히 이중 지난해 신동빈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대해 국민연금의 반대표를 받기도 했던 롯데케미칼에 시선이 쏠린다. 당시 국민연금과 의결기관인 좋은기업연구소 등은 신 회장이 과거 배임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국정농단 뇌물 공여 혐의로 구속되는 등 대표이사가 개인적인 일로 기업가치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롯데케미칼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한다고 배경을 전했다.
다만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3월 제43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이들의 사전 반대표에도 불구하고 신동빈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통과시켰다. 당시 의장을 맡은 김교현 롯데케미칼 대표는 지난해 주총에서 "일부 기관 및 외국인 주주가 사전에 반대 의견을 표시했으나 당사가 이미 확보한 의결권 수가 출석 주식 수의 63% 이상이므로 영향이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최고 의결기구인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지난달 27일 국민연금의 경영참여 목적 주주권 행사 대상 기업과 범위, 절차 등을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의결하면서 오너나 최고경영자(CEO)의 횡령이나 배임, 사익편취 등에 기업가치가 추락했는데도 개선 의지가 없는 투자 기업에 대해 이사해임이나 정관변경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올해 분위기는 다르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동빈 회장이 최근 롯데건설 이사직을 스스로 물러났고 국민연금이 투자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더욱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신 회장의 집행유예 4년의 대법원 판결을 예로 들어 이사해임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다.
또한 롯데케미칼이 올해 1월1일부로 자회사 롯데첨단소재를 합병하며 김교현 롯데케미칼 총괄 대표이사 사장(당시 롯데그룹 화학BU장 사장), 임병연 롯데케미칼 기초소재부문 대표이사 부사장(당시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부사장), 이영준 롯데케미칼 첨단소재 부문 대표이사 부사장(당시 롯데첨단소재 전무)을 모두 대표 자리에 앉히는 3인 각자 대표 체재를 구축했기 때문에 신 회장이 롯데케미칼 사내이사로써 역할이 줄어드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계열사 이사 과다겸직 논란에 더해 롯데케미칼이 통합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하며 총괄 대표가 생겼고 3인 각자 대표 체제가 구축된 상황에서 신 회장이 직무를 충실히 이행하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신동빈 회장은 롯데케미칼의 사내이사를 전신인 호남석유화학 시절부터 16년 째 맡고 있다. 신 회장은 故 이영일 전 롯데케미칼 대표, 2018년 롯데그룹 화학BU장 부회장으로 용퇴한 허수영 전 롯데케미칼 대표, 현재 롯데케미칼을 이끌고 있는 김교현 현 롯데케미칼 총괄대표, 지난해 처음으로 사내이사를 맡게된 임병연 롯데케미칼 부사장까지 롯데케미칼 사내이사 계보가 이어질때 지속해서 사내이사직을 유지해 왔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이)다른 계열사 사내이사를 사임한 것에 대해 답변을 드릴 입장은 아니다"면서도 "국민연금의 의사를 존중하지만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주총때보다 국민연금공단의 보유주식 수가 35만 주 가량 감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신동빈 회장의 이번 롯데건설 사내이사 사임이 논란과 별개로 지주사 체제를 출범한 만큼 각 계열사 대표들에게 더욱 독립적인 경영 활동을 보장해주기 위한 선택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여전히 롯데케미칼에서 해야할 역할이 있고 사내이사직을 물러난 롯데건설과 규모의 차이 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롯데케미칼 사내이사직을 스스로 물러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롯데케미칼은 그룹 총수에 대한 비중이 상당한 계열사다. 롯데케미칼은 신 회장이 전신인 호남석유화학 시절 처음으로 경영 수업을 받은 곳으로 16년 째 이사직을 유지 중이다. 특히 롯데케미칼은 석유화학업체로 프로젝트 특성상 수 조원 대가 오가는 굵직한 해외 사업 및 투자에 대한 결정권이 필요한 회사이기고 하다. 또 수년 째 연 영업이익 1조 원대 이상을 올리고 있는 그룹 핵심 계열사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한편 신동빈 회장은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올해 첫 롯데 VCM(옛 사장단회의)를 주재했다. 연말 임원 인사를 통해 일부 세대교체가 이뤄진 만큼 새로운 얼굴이 한자리에 모여 그룹의 재도약 의지를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최근 논란에 대한 책임과 함께 롯데그룹이 롯제지주를 출범한 지 2년 여가 되가는 시점에서 사내이사 사임이 이뤄졌다. 이런 차원에서 신 회장이 강조한 책임경영이 본격화됐다고 볼 수 있다"며 "롯데케미칼의 경우 올해 막 새롭게 재편됐고 그룹 명운이 달린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그룹 총수 겸 사내이사로써의 역할도 충분히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롯데쇼핑, 롯데제과 등은 올해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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