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환경 악화로 1년 내내 밝지 않았던 재계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 그리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국내 대표 그룹 총수들은 지난 1년 동안 각각 엇갈린 행보를 보였다. 눈앞에 놓인 그룹 현안에 따라 각각 자신만의 경영 스타일을 통해 해법을 찾는 모습을 보였다.
행보는 달랐지만, 지향점은 같았다는 게 재계 평가다. 바로 '위기 돌파'와 '미래 준비'가 각 그룹의 공통된 화두였다. 이 때문에 경영을 책임지는 총수들의 표정은 1년 내내 어둡고 진지했다. 이들은 신성장 동력 창출을 위해 과감한 변화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 '미래'를 염두에 둔 선제적 대응 차원의 변화를 시도했다.
◆ 대외 활동 활발했던 최태원…구광모·신동빈 내실 다지기 집중
최태원 회장은 올해 그 어떤 총수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그룹 경영이 큰 리스크 없이 무난한 가운데 사회적 가치 창출 확대를 위한 글로벌 행보를 이어갔다. 이 때문에 각종 포럼 등 공식 무대에 서는 일이 많았다. 그는 최근 몇 년간 '딥체인지(근원적 변화)'를 경영 철학으로 강조하며 중요한 방법론으로 사회적 가치를 제시해왔다.
회사 내부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회적 가치 추구'라는 경영 철학을 구성원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딥체인지' 실행력을 높이는 차원이기도 했다. 최태원 회장은 올해 초 약속한 '행복 토크 100회 진행'을 지난 17일 완료했다. 최태원 회장이 '행복 토크'를 위해 이동한 거리는 지구 한 바퀴와 맞먹는 3만9580km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태원 회장의 외향적인 성격이 잘 나타난 한해였다는 평가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가치관을 설파하고, 이를 그룹에 정립하기 위해 전면에 나섰다. 때로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 중요성을 국제 사회에 직접 호소하기도 했다. 현재 그는 글로벌 기업과 협업해 사회적 가치 측정을 표준화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 구광모 회장은 지난해 갑작스럽게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집중했던 '내실 다지기'가 올해까지 이어졌다는 평가다. 구광모 회장은 계열사 전문경영인에 의한 책임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외부 활동은 알리지 않고, 대외 행사는 주로 권영수 LG 부회장에게 맡기고 있다.
'은둔 경영'을 펼친 건 아니다. '인재'와 '기술 경쟁력' 등 관심사에 대해선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구광모 회장은 올해 첫 대외 행보를 국내 이공계 석·박사 과정 연구개발(R&D) 인재 350여 명과 만나는 일로 시작했다. 이후에도 R&D 현장을 주로 누볐다. 성과를 낸 임직원을 격려하는 일, 기술 역량 강화 상황을 점검하는 일 등에 집중했다.
신동빈 회장도 '내실 다지기'에 초점을 맞춘 경영을 펼쳤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해 말 경영에 복귀해 그룹을 재정비하는 '정상화 작업'에 집중했다는 설명이다. 눈에 띄는 대외 활동을 펼치기 위한 상황도 좋지 않았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리스크를 안고 있었던 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묵묵한 현장 경영은 이어 나갔다. 특히 지난 5월 롯데케미칼의 대규모 대미 투자를 계기로 이뤄진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은 '글로벌 롯데'를 향한 신동빈 회장의 계획 의지가 분명히 드러난 상징적 장면으로 꼽힌다.
재계는 신동빈 회장의 활동량이 더욱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법원 확정 판결로 사법 리스크를 벗어던졌기 때문이다. 주 활동 영역은 해외가 될 전망이다. 그동안 롯데그룹은 '지속 성장'을 목표로 잡은 신동빈 회장 지휘 아래 전 사업 부문의 글로벌화를 추진해왔다.
◆ 최태원·구광모·신동빈 "최악의 위기…미래 준비 철저히 해야"
최태원·구광모·신동빈 회장은 엇갈린 행보를 보이면서도 공통된 키워드로 '미래 준비'를 제시했다. 경영 환경에 불확실성의 그늘이 커지면서 대응력을 높여야 생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메시지를 내놓는 동시에 주요 경영진을 향해 '미래 전략'을 수립해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앞서 최태원 회장은 자신이 SK 회장을 맡은 이후 20년 동안 "이런 종류의 지정학적 위기라는 건 처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이러한 위기에)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딥체인지'로 귀결된다.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비즈니스 모델과 일하는 방식을 혁신해 그룹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대외 메시지가 많지 않았던 구광모 회장도 위기론을 내놨다. "L자형 경기침체 등 지금까지와는 다음 양상의 위기에 앞으로 몇 년이 우리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하며 미래 사업에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을 주문했다. 구광모 회장은 미래 생존을 위해선 새로운 고객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신동빈 회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주요 경영진과 만날 때마다 '위기'를 언급하며 생존을 위한 미래 준비를 당부해왔다. 또한, 미래 전략 중 하나로 '좋은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얻는 '공감 경영'을 제시했다. 앞서 신동빈 회장은 "단순히 유명 브랜드가 안정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났다"며 "'좋은 일하는 기업'이라는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최태원·구광모·신동빈 회장은 올해 그룹 구성원을 위기의식으로 재무장시키는 메시지를 냈다. 이는 먹구름이 낀 기업 경영 환경이 갈수록 나빠질 것에 대한 예방 주사 차원이자, 구성원에게 현실을 직시하고 사업을 펼치라는 일종의 경고로 풀이된다. 이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새 판 짜기'에도 속도를 냈다. 연말 임원 인사를 통해 세대교체를 단행하고, 새로운 조직을 신설하며 미래 준비 실행력을 높였다.
'변화 없이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는 각오가 올해 임원 인사에서 확연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특히 신동빈 회장은 대표급 인사만 22명 교체했다. 구광모 회장 역시 경영진을 60대에서 50대 초중반으로 물갈이했다. 최태원 회장의 경우 주력 계열사 경영진을 유임하며 안정을 택하면서도 부문장급 임원 다수를 교체하고 신성장 관련 임원을 확대하는 등 세대교체를 이뤄냈다.
재계 관계자는 "올해 재계 총수들은 각자 다른 행보를 보였지만, 결국 '위기 대응책 마련'과 '미래 준비 가속화'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달렸던 것 같다"며 "다가오는 재계 신년사에도 이와 관련한 메시지가 담기며 총수들의 재도약 의지가 재차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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