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규제책에도 서울 부동산값 '상승가도'
[더팩트|윤정원 기자] 서울을 필두로 부동산 열기가 식을 기미가 없자 정부는 해 바뀌기 직전 또다시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나온 관련 부처 합동 부동산 대책만 해도 벌써 4번째. 개별 또는 후속 조치까지 합치면 대책은 무려 18번에 달한다.
그러나 정부의 애 닳는 마음에도 부동산 가격은 규제책을 비웃듯 수도권을 중심으로 천정부지 치솟는 형국이다. 2019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아파트값은 전국 평균 상승률보다 2~3배 뛰었다. 반면 지방 도시 아파트값은 3~4배가량 고꾸라졌다. 업계에서는 올해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 또한 '약발'이 약했다고 평가한다.
◆ 4년 7개월 만에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재도입
올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물꼬를 튼 것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6월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현행 공공택지에서 분양하는 아파트의 분양가격을 조정하는 분양가상한제의 기능은 한계가 있다"며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결국 지난달 6일 국토교통부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2015년 4월 이후 사실상 시행이 중단된 분양가 상한제를 4년 7개월 만에 재도입하기로 확정했다.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민간 주택 공급 가격까지 제한하겠다는, 사실상 '극약 처방'이었다.
정비사업·일반분양사업이 많거나 새집 분양이 주변 집값을 자극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 강남구 개포·대치·도곡동, 서초구 잠원·반포동, 송파구 잠실·가락동, 마포구 아현동, 용산구 한남·보광동, 성동구 성수동1가 등이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으로 지정됐다. 서울 27개 동이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지역으로 묶였다.
분양가 상한제는 택지비에 정부가 정한 표준 건축비를 더해 분양 아파트 가격을 정한다.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가 분양가를 20~30% 낮출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부동산 전문가들은 공급 부족을 심화시켜 중·장기적으로는 가격이 다시 치솟는 패턴을 반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당시 업계 관계자들은 "분양가 상한제는 재건축 후분양 꼼수에 대한 극약처방" "재건축단지의 사업성을 악화 시켜 공급 부족을 초래할 것" "싼값에 분양가를 책정해도 결국 주변 시세까지 집값이 상승하는 '로또청약'만 양산할 것" 등의 우려를 쏟아냈다.
실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이후에도 시장은 잠잠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분양가 상한제 지정을 피한 동작구와 양천구, 경기도 과천·광명·하남 등지로 집값 상승세가 확산됐다. 정부는 조용히 추가 대책을 준비했다.
◆ '공시가격 신뢰성 제고안' 발표
정부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라는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데 이어 같은 달 보유세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손질에도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1월 17일 '2020년 부동산 가격 공시 및 공시가격 신뢰성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그간 공시가격 번복 등을 비롯해 공시가격 산정에 대한 비판이 이어져 온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내년도 부동산 공시가격을 시세 9억 원 이상 주택을 대상으로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 반영률)을 목표치만큼 끌어올리기로 했다. 현실화율 목표치는 공동주택의 경우 시세 9억∼15억 원은 70%, 15억∼30억 원은 75%, 30억 원 이상은 80%다.
정부는 한국감정원에선 '조사 담당자-지사장-공시본부'에 이르는 검증 체계를 강화하고, 오는 2021년부터 감정원 자체 자격시험을 통과한 사람만 주택 공시가격 산정을 맡게 한다는 방침까지 내세웠다.
하지만 정부의 제고 방안에도 부동산 유형별·지역별·가격대별 불균형에 대한 비판은 불식되지 않았다.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산정하는 한국감정원의 전문 인력 부족과 더불어 감정원 '자체 시험'은 형평성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정부의 제고안은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 '보유세' 올리고 '양도세' 줄이고…'분양가 상한제' 확대 적용
정부의 규제책에도 계속해 집값이 날뛰자 이달에는 기습적인 전방위적인 부동산 대책이 등장했다. 지난 16일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금융위원회·국세청은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의 시가 9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해 LTV를 20%로 낮추기로 했다. 현재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는 주택가격과 상관없이 LTV 40%가 적용됐다. 시가 15억 원 이상 초고가 아파트의 경우 가계, 개인사업자, 법인 등 모든 차주에 대해 대출이 금지됐다.
종합부동산세는 0.1%~0.3%p 인상됐다. 3주택 이상 보유자, 조정대상지역 내 2주택 보유자는 0.2~0.8%p 올랐다.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는 세부담 상한도 높아졌다. 현재 200%인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 세부담 상한은 이번 조치로 300%까지 상향됐다.
아울러 정부는 2021년 이후 양도분부터 2년 미만 보유 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율을 인상하기로 했다. 내년 6월 말까지 다주택자가 조정대상 지역 내 10년 이상 보유한 주택을 양도할 경우 양도세 중과 배제와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적용한다며 다주택자의 매도심리를 유도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지역도 늘렸다. 기존 서울 8개 자치구(강남·서초·송파·강동, 마포·용산·성동, 영등포) 27개 동에서 해당 자치구 전체로 대상을 확대했다. 동작·양천·중구·광진·서대문 등 5개 구 전체도 대상 지역으로 포함됐다.
◆ 전문가 "전방위 대책이나 집값 안정 미지수" 우려
그러나 정부가 올해 발표한 부동산 대책들과 관련,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책이 강도 높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집값 안정을 거둘 수 있을 지는 의문을 표한다. 근본적으로 매매 수요가 움츠러들 뿐 신규 주택 공급 갈증 해소는 풀리지 않고 있는 탓이다.
임재만 한양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실수요자 우선과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방향성은 옳다"면서도 "다만 집값이 오르기 전에 막는 것이 아니라 오르고 나서 대책을 내놓는 데 급급한 점은 아쉽다"라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은 지역경제와 맞물려 있는 만큼 지역 경제 활성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정부의 규제로 급등하던 부동산 시장이 일단 단기적으로는 안정될 수 있으나 공급 대책은 예전 수준에 머무른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대출 규제로 중산층의 '내 집 마련' 통로가 차단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출 규제로 인해 현금 운용이 어려운 서민들은 결국 자가 마련을 포기하게 되고, 결국 '현금 부자들의 판'이 열릴 것이라는 견해다.
허준열 투자코리아 대표는 "대출을 막는 것보다는 다주택자 보유세 강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정책적으로 옳다"며 "대출을 막는 것은 서민들은 애당초 집을 사지 말고 지방 변두리 가서 살라는 얘기다. 결국 현금 부자들 세상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 규제 강화로 준비 현금 규모가 커졌다. 이런 식이라면 중산층 이하는 서울에서 집을 사면 안 된다는 의미가 되고, 현금 부자의 자산증식을 부추기게 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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