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정의선, 조직문화부터 사업 포트폴리오까지 '대수술' 집도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의 2019년 한 해는 '쉴 틈 없고', '다사다난한' 1년이었다.
북미 무역 분쟁과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로 경색국면을 맞은 한일 경제, 여전히 진행형인 중국의 무역 보복에 이어 정치·사회적 이슈까지 더해지는 등 산재한 불확실성 속에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한 경영 구상 수립에 몰두한 두 사람의 올해 일정표에는 공란이 없다.
◆ 민간외교 전면 나선 '삼성 리더' 국내 경계 허문 '광폭 행보'
지난해 2월 경영 복귀 이후 그룹의 최고의사결정권자로서 분초를 다투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이 부회장은 미래 신성장 동력 발굴 및 신기술 경쟁력 확보에 집중하며 안팎의 변화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민간 외교 전면에서 삼성의 얼굴을 자처하며 글로벌 유수의 국가원수급 인사 및 경제계 인사 등 각계각층 실력자들과 지속적인 스킨십으로 '삼성'은 물론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일궈냈다는 점에서는 경제계 안팎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지난해 8월 인공지능(AI)과 5G, 바이오, 자동차 전자장비 등 '4대 미래 성장사업'을 기반으로 180조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안을 내놓은 이 부회장은 올해를 플랜 시행의 시발점이자 원년으로 삼고 국내외를 막론, 현장 경영의 영역을 전자부터 비(非)전자 계열사까지 확대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경기도 수원사업장 5G 네트워크 통신장비 생산라인 가동식 참석을 기점으로 이달까지 두 달에 한 번꼴로 국내외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18일 스웨덴 최대 기업집단인 발렌베리그룹의 수장인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을 비롯해 일본 최대 소프트웨어 유통회사이자 IT 투자기업인 소프트뱅크 수장 손정의 회장을 비롯해 무케시 암바니 인도 릴라이언스그룹 회장, NTT도코모·KDDI·도이치텔레콤 경영진 등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 등 해외 정상을 비롯해 이 부회장이 만난 인사들의 수도 상당하다.
삼성전자의 체질 개선 역시 눈여겨 볼만하다. 이 부회장은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삼성전자의 최우선 실천과제로 '혁신'과 더불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제시했다.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사회와 인류 미래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업의 역할 수행에 앞장서야 한다는 이 부회장의 주문 이후 삼성전자는 지난해 무려 11년 동안 이어져 왔던 '반도체 백혈병' 사태에 종지부를 찍은 데 이어 '비노조 원칙'을 과감히 폐기했다.
물론 이 부회장이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지난 10월 시작된 파기환송심이 연내 매듭지어질 것이란 관측과 달리 장기화하면서 내년 경영 구상의 정지 작업이라고 볼 수 있는 정기 임원 및 사장단 인사 역시 덩달아 해를 넘기게 됐다.
게다가 지난 17일 사내·외 이사들과 회사 주요 경영 안건을 결정하는 '수장' 역할을 맡고 있는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노조 와해 개입 혐의로 구속된 것 역시 부담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올 한 해 이 부회장의 안팎에서 보여준 리더십은 변화와 혁신의 강도 면에서 선대가 보여준 것과 비교해 모자람이 없다"라며 "최근 노조 와해 이슈와 관련해 삼성전자가 발표한 사과문 역시 과거 삼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방식의 대응이다. 이미 올해 삼성이 추구하고자 하는 미래 사업 구상에 대한 '큰 틀'을 다져놓은 만큼 이 부회장의 거취에 변함이 없다면, 삼성의 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 집무실 아닌 단상에 선 '토크맨' 정의선, 현대차 체질개선 '초집중'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역시 올 한해 공란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조직문화를 비롯한 대대적인 체질개선에 이어 글로벌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국내외 유수 스타트업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에 이르기까지 선대 못지않은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며 최고의사결정권자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기 위한 선시행과제로 '조직의 생각하는 방식'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제시한 정 수석부회장은 임직원들의 '탈(脫) 넥타이·와이셔츠' 문화 정착, 보고 체계 간소화에 이어 올해 최초로 그룹 차원의 정기 인사에서 연중 수시인사 제도를 도입하는 등 경제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정 수석부회장이 추구하는 혁신의 방식은 임직원과 소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실제로 지난 2월에는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넥쏘'를 직접 타고 제작한 '셀프 홍보 영상'을 사내 임직원들에게 공개했고, 10월에는 양재동 사옥에서 1200여 명의 임직원들과 나눈 '타운홀 미팅'에서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허심탄회한 소통의 시간을 가져 눈길을 끌었다.
글로벌 완성차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생산거점 확대 전략도 올해 들어 구체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연평균 55만 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글로벌 핵심 생산거점으로 꼽히는 미국 조지아 공장 양산 1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 북미 시장 선점 확대 의지를 밝힌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5일에는 연간 최대 생산능력 30만 대 규모의 인도 안드라프라데시주 아난타푸르에 있는 인도공장 준공식을 열고 미국과 중국에 이어 신흥시장 개척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완성차 제조사'라는 기존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업체'로의 전환을 공언한 이후 현대차의 변화 속도와 강도는 상당하다. 정 수석부회장이 추진하려는 미래 경영 구상은 지난 4일 발표한 중장기 혁신 경영 계획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능형 모빌리티 제품'과 '지능형 모빌리티 서비스'를 양축으로 사업 구조 재편을 꾀하고, 미래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오는 2025년까지 61조100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자동차를 만들고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방식에서 자동차와 정비, 관리, 금융, 보험, 충전 등 주요 서비스를 결합해 제공하는 사업 모델을 구축하는 데까지 영역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복안이다.
혁신의 연장선으로 정 수석부회장은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는 '국제가전박람회(CES) 2020'에서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과 △PBV(목적 기반 모빌리티) △Hub(모빌리티 환승 거점) 등 세 가지 구성 요소로 요약되는 신개념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공개하고, 현대차가 지향하는 경영 구상을 구체화한다는 계획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보수적'이라는 그룹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완성차 제조사'라는 회사의 정체성 자체를 바꿔놓으려는 정 수석부회장의 시도는 그 속도와 폭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속도감 있고, 광범위하다"라며 "수십조 원에 달하는 '통 큰' 투자 계획을 제시한 만큼 내년을 기점으로 현대차그룹의 미래차 기술 및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 개발 전략에도 더욱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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