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끌어온 키코 손해배상비율 최대 41%…은행 수용 여부 미지수

정성웅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통화옵션계약(키코) 관련 금융분쟁조정위원회 개최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분조위는 금융위기 당시 발생한 통화옵션계약 분쟁조정신청에 대해 은행의 불완전 판매책임을 인정하고 손해액의 일부를 배상토록 조정결정했다고 밝혔다. /황원영 기자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키코 불완전판매 인정

[더팩트│여의도=황원영 기자] 금융감독원이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 재조사 1년 5개월 만에 불완전판매에 따른 손해배상을 인정했다. 지난 2008년 키코 사태가 발생한 지 11년 만이다. 다만,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의 결정에 강제성이 없다는 점은 논란으로 남아 있다. 은행들은 현행법상 소멸시한(10년)이 지난 사안인 만큼 배상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분쟁 조정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들까지 줄줄이 보상에 나서게 될 경우 수천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배상해야 한다는 점 역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금감원 키코 상품 분조위는 13일 키코를 판매한 6개 은행에 대해 불완전판매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 기업 손실액의 15~41%(평균 23%)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은행별로는 신한은행이 150억 원, 우리은행 42억 원, 산업은행 28억 원, KEB하나은행 18억 원, 대구은행 11억 원, 씨티은행 6억 원을 각각 배상하도록 했다. 키코 피해기업 중에서는 일성하이스코·남화통상·원글로벌미디어·재영솔루텍 등 4개사가 조정에 참여했다.

금감원은 손해 배상 비율을 결정하기 위해 기존 불완전 판매 분쟁 조정 사례에 따라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 기본 30%를 적용했다. 여기에 개별 기업들의 계약별로 배상 책임을 가감했다. 주거래은행이 외환 유입 규모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경우, 만기를 과도하게 장기로 설정해 위험을 증가시킨 경우 등은 배상 비율을 높였다. 반면 기업의 규모가 크거나, 파생상품 거래 경험이 많거나, 장기간 수출 업무를 봐서 환율 변동성을 알 수 있었던 경우에는 배상 비율을 낮췄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으나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보는 파생상품이다.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기업은 시장가격보다 높은 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지만, 환율 등락폭이 상한선이나 하안선을 넘으면 대규모 환손실을 입을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됐다. 중소 수출기업들이 은행의 권유로 가입했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율이 급등하면서 막대한 손해를 입고 줄도산했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723개 기업이 약 3조3000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당시 피해 기업들은 키코 상품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며 이를 판매한 금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키코 계약이 불공정행위이므로 무효"라는 기업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은행들이 상품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며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인정했다.

분조위 역시 키코 계약이 불완전판매임을 강조했다. 분조위는 판매 은행들이 계약 체결 시 예상 외화유입액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거나 다른 은행의 환 헤지 계약을 고려하지 않고 과도한 규모의 환 헤지를 권유해 적합성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또 환율 상승 시 무제한 손실 가능성 등 예상되는 위험성을 기업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 등 은행들이 설명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키코 사건 피해기업들로 구성된 키코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해 6월 정부서울청사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더팩트DB

배상비율은 결정됐지만, 분쟁 조정 절차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우선 양측이 분조위 결정을 수용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은행들이 분조위 배상안을 받아들일지가 관건이다. 은행 측은 손해배상 청구권의 민법상 소멸시한(10년)이 지난 사안인 만큼 은행의 배상 의무가 소멸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배상하는 것이 주주 이익을 해치는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키코 피해기업에 배상하는 것을 두고 주주들이 배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며 "법률 검토를 거쳐 어러 가지 사안을 검토하고 이사회를 통해서도 어떤 결정이 나는지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금융 분쟁 조정은 당사자 사이의 양해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로 소멸시효가 완성된 사건이라도 임의 변제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한 과거 키코 불완전 판매에 따라 줘야 했던 배상금을 뒤늦게 지급하는 것이므로 배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은행 경영진이 소비자보호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한다면 배임으로 보기 어렵다"며 "우리나라는 이중 대표 소송이 도입돼 있지 않기 때문에 지주사의 개인주주가 은행 이슈에 대해 배임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양측이 분조위 권고안을 수용할 경우 다른 피해기업의 추가 분쟁 조정이 이어질 전망이다. 당시 재판에 참여하지 않고 이번 분쟁 조정도 신청하지 않은 기업은 150여 개로 추산된다. 이들에 대한 배상이 결정되면 은행이 부담해야 할 키코 배상금은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분조위는 양측에 조정 결정 내용을 통지하고 수락을 권고한다는 계획이다. 양측은 배상비율 권고안을 받은 뒤 20일 이내에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양측이 분조위 결정을 받아들일 경우 이번 분쟁 조정에 신청하지 않은 피해기업들에 대한 보상 절차도 진행될 전망이다. 분조위는 이번 조정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 기업에 대해서는 은행과 협해 피해배상 대상 기업 범위를 확정하고, 자율조정 방식으로 분쟁 조정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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