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감자 농가 '백기사' 자처한 사연은?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재계에서 손꼽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경제계에서 쉽게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행보로 소통 경영의 '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정 부회장이 이번에는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목소리 출연'(?)을 통해 '남다른 소통'에 나서며 눈길을 끌었다.
정 부회장이 '깜짝 등장'한 프로그램은 전날(12일) 오후 방송된 SBS의 예능 프로그램 '맛남의 광장'이다. '맛남의 광장'은 출연진이 지역 농가에서 생산하는 특산품을 활용해 신메뉴를 개발, 휴게소에서 직접 판매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못난이 감자'(폐품 감자)로 시름에 잠긴 강원도의 한 감자 농가를 방문한 백종원이 자신의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해당 농가에 쌓여 있는 못난이 감자는 모두 30t에 달했다. 해결방법을 모색하던 백종원은 이내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 생각났다"라며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정 부회장이었다.
백종원으로부터 방송 취지 및 농가의 상황에 관해 설명을 들은 정 부회장은 "바이어와 담당하고 얘기를 나누겠다"라며 "고객들에게 알려서 제값 받고 팔 수 있도록 해보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자가) 안 팔리면 제가 다 먹겠다. 제가 감자를 좋아한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실제로 두 사람의 통화 이후 이마트에서는 전국 141개 점포에서 별도의 코너를 조성해 못난이 감자를 비롯해 소외된 지역특산물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의 이색 소통은 재계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재벌 총수의 활발한 SNS 활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달 27일 인스타그램에 '땡스기빙(추수감사절, 현지 시각 28일) 족발 삶음'이라는 글과 함께 직접 삶은 족발 사진을 공개해 눈길을 끈 바 있다. 백종원과 인연 역시 '요리'가 매개체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 부회장의 SNS 게시물은 단순히 일상을 공유하는 것 외에도 유통 사업 분야에서 새롭게 시도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실제로 같은 달 정 부회장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골프장갑을 착용한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렸다. 사진 속 골프장갑은 이마트 자체 브랜드 상품 '노브랜드' 전용 제품으로 정 부회장은 해당 게시물에 '#노브랜드 #골프장갑 두 장에 #9800원'이라는 해시테그를 덧붙여 화제를 모았다.
앞서 체험형 가전 전문점 '일렉트로닉마트' 매장 사진과 더불어 '삐에로쑈핑'의 광고영상, 노브랜드 버거 관련 게시물 등을 SNS 계정에 올린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하며 홍보 효과로 이어졌다.
정 부회장이 SNS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는 단순히 브랜드 론칭 홍보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업계 안팎에서는 정 부회장이 추진하고자 하는 미래 경영 전략 및 구상을 점칠 수 있는 단초라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 7월 정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이마트 경영전략 회의' 당시 강의 평가 장면을 담은 두 개의 사진과 글이 대표적이다.
정 부회장은 해당 게시물에서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오고, 기회는 생각보다 늦게 온다"라고 말했다.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회사 차원의 기민한 대응을 당부하는 그의 메시지는 한 달여 후에 이마트의 초저가 전략 프로젝트인 '국민가격' 마케팅으로 이어졌고, 석 달 후에는 이마트 창사 이후 첫 외부 출신 대표이사 선임이라는 인적 쇄신으로 진화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총수들이 임직원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사옥 근처 호프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광경은 보편적으로 볼 수는 없다 하더라도 더는 낯선 광경은 아니다"라며 "주요 그룹을 중심으로 40, 50대 총수 중심의 세대교체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소통 경영'은 어느덧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정용진 부회장의 경우 일찍이 SNS라는 창구를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소통을 이어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룹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보여주는 탈권위 행보와 친근한 이미지는 기업 및 브랜드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바꾸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라며 "특히, 정 부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온라인 채널과 경쟁이 갈수록 심화하는 등 시장 구조 변화 속도가 빠른 유통 업계에서 신세계가 생존 전략을 구상하는 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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