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별세] '현대차' 아성 넘보고, '삼성' 만큼 유명한 그 이름 '대우자동차'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오후 11시 50분 향년 8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완성차 업계 안팎에서는 여전히 김 전 회장이 과거 대우자동차를 통해 보여준 새로운 시도와 과감한 도전이 국내 자동차 산업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제공

최초 경차 '티코', 파격 디자인 '에스페로'…현대차 자웅 겨뤘던 대우자동차

[더팩트 | 서재근 기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오후 11시 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한때 재계 서열 2위로 나라 경제의 한 축을 맡았던 대우그룹의 수장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경영인이 남긴 업적은 그가 걸어온 80여 년의 세월만큼이나 두텁다. 특히, 국내 완성차 산업에서의 발자취는 오늘날까지도 의미 있는 경제사(經濟史)로 평가받는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와 우즈베키스탄 등 일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브랜드 '갤럭시' 시리즈 만큼이나 한국 대표 격으로 인식되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대우(자동차)'다.

대우자동차의 전신은 지난 1955년 설립된 신진자동차공업이다. 일본 토요타를 거쳐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한 뒤 내수 시장에서 명맥을 이어 온 신진자동차를 1978년에 인수한 김우중 전 회장은 인수 6년여 만에 GM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는 데 성공하며 1983년 '대우자동차'를 출범했다.

'선택과 집중', '새로운 도전'으로 요약되는 김우중 전 회장의 경영 전략은 지난 1990년대 후반까지 대우자동차의 전성기를 주도한 성장 동력 그 자체였다. 회사 출범 초기 막대한 초기 개발 자금이 필요한 신차 개발보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부담이 덜한 상품성 개선 모델을 내놓는 데 주력하며 브랜드 이미지 알리기에 나선 김우중 전 회장은 이후 '차별화' 전략에 집중, 국내 완성차 시장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국내 최초 경차 '티코'가 대표적이다. 지난 1980년대 후반 국민소득 증가에 힘입어 '자가용'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하자 김우중 전 회장은 '마이카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정지 작업에 속도를 높였다. 국내 완성차 업계 '맏형'격인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가 1세대 '엑셀'(1985년)을 전면에 내세우며 소형차 시장을 주름잡던 당시 김우중 전 회장은 직접 경쟁이 아닌 다른 세그먼트의 차량을 완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 1991년 5월 우리나라 최초 경차 티코를 출시한 대우자동차는 이후 소형 세단 라노스와 준중형 모델 누비라, 중형 모델 레간자의 흥행에 힘입어 지난 1998년 사상 처음으로 현대차를 제치고 내수 판매 1위에 오르며 존재감을 드러낸 바 있다. /한국지엠. 네이버 자동차 페이지 캡처

김우중 전 회장의 이 같은 전략은 대우자동차 산하 '대우국민차'가 정부 주도의 '국민차 사업'의 경차 생산 업체로 선정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1991년 5월 출시된 '티코'는 796cc의 엔진을 장착, ℓ당 24km라는 연비를 뽐냈다. 당시 '티코'의 차체 길이는 3340mm, 공차중량은 640kg으로 기아자동차의 '모닝'(전장 3595mm, 890~960kg)과 비교해도 200mm 이상 짧고, 200kg 이상 더 가벼웠다. 일반 가정에 '세컨드 카'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 비교 대상 자체가 없었던 경차의 특색은 '티코'가 '국민 경차'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기존에 없었던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김우중 전 회장의 일념이 국내 완성차 시장에 획을 그은 사례는 또 있다. 지난 1990년 출시된 대우자동차의 첫 고유 모델 '에스페로'는 날렵한 측면 라인과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국내 준중형 세단 시장에서 현대차의 '엘란트라'의 대항마로 급부상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당시 중형 세단과 견줘도 손색없는 실내공간을 확보한 '에스페로'는 지난 2017년 국내 최대 자동차 오픈마켓 SK엔카닷컴이 성인남녀 495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다시 출시된다면 구매하고 싶은 차' 순위에서 1986년형 현대차 대형 세단 '그랜저'와 1993년형 쌍용자동차의 '무쏘'에 이어 3위에 오른 바 있다.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공격적인 신차 출시 및 수출 등으로 세 확장에 나선 대우자동차는 지난 1998년 다시 한번 새로운 역사를 쓰는 데 성공한다. 이른바 '대우차 3종 세트'로 불리던 소형 세단 '라노스'와 준중형 모델 '누비라', 중형 모델 '레간자'의 흥행에 힘입어 사상 처음으로 현대차를 제치고 내수 판매 1위에 오른 것.

김우중 전 회장은 지난 1996년 이후 라노스와 누비라, 레간자 등 소형부터 중형 세단까지 3종의 신차를 거의 동시에 출시하는 파격 행보에 나서는 등 새로운 시도로 주목을 받았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제공

그러나 대우자동차의 '태평성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1990대 후반 우리나라 경제 전반을 뒤흔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촉발한 경영 위기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비롯한 극약처방으로도 막지 못했고, 10년여 만에 부도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김우중 전 회장의 손을 떠난 대우자동차는 지난 2002년 GM에 인수되며 'GM대우'로 새로운 출발에 나섰지만, 지난 2011년 GM대우의 사명이 '한국지엠'으로 바뀌면서 그마저도 남았던 '대우'의 흔적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대우자동차'는 사라졌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여전히 김우중 전 회장이 보여준 새로운 시도와 과감한 도전이 국내 자동차 산업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대우자동차'라는 브랜드는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그 파급력이 상당하다. 특히,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독보적이다"라며 "대우차의 트럭 부문을 인수한 인도의 타타그룹이 여전히 '타타대우상용차'라는 이름을 고집하는 것 역시 동남아지역에서 절대적인 '대우' 브랜드의 신뢰도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만일 대우자동차가 예전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었다면, 오늘날 '2강 3약' 구도로 불균형 상태에 빠진 국내 완성차 시장 판도는 현대차와 대우차의 양강 구도를 축으로 균형을 갖췄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라며 "비록 국내 완성차 기업이 일궈놓은 사업이 외국 자본에 헐값으로 매각되는 아쉬운 결과로 이어졌지만, 대우자동차라는 브랜드가 남긴 발자취는 국내 완성차 업계에도 매우 의미가 크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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