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확대경] 구광모 첫 LG 사장단 회의…극명하게 드러낸 '생존 의지'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4일 경기도 이천 LG인화원에서 LG 최고경영진이 모인 가운데 경영 전략을 논의하는 사장단 워크숍을 열었다. /더팩트 DB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장단 회의서 "미래 없다는 각오로 변화해달라"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취임 후 첫 사장단 회의를 개최했다. 다른 경쟁 기업들과 소송도 불사하는 등 최근 LG그룹이 보이고 있는 경영 행보와 관련해 다소 '독한' 메시지가 나올 것이란 재계 관측과 달리 구광모 회장은 갈등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만 LG 사장단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기업의 '생존'을 강조하며 위기 극복 대응 수위를 한층 높였다는 평가다.

◆ 독해진 LG…구광모 회장, 사장단 회의서 생존 위한 변화 강조

구광모 회장은 24일 경기도 이천 LG인화원에서 LG 최고경영진과 경영 전략을 논의하는 '사장단 워크숍'을 열었다. 구광모 회장을 비롯해 권영수 ㈜LG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등 계열사 CEO 및 사업본부장 등 30여 명은 머리를 맞대고 불확실성이 높아진 경영 환경 속에서 미래 생존을 위한 고객 가치 창출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나갔다.

구광모 회장이 계열사 사장단과 한자리에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장단 워크숍'은 매년 9월쯤 정기적으로 열렸지만, 구광모 회장 취임 첫해인 지난해는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 별세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시급하게 진행된 탓에 열리지 못했다.

이날 회의에서 구광모 회장은 당초 재계가 예상했던 '독한' 메시지를 내놓진 않았다. 앞서 재계는 구광모 회장이 이번 회의를 통해 공격적인 경영 스타일의 메시지를 던지며 점잖고 신사적인 이미지를 벗어던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강조했던 이전과 달리 '생존'과 '극복' 등 위기 상황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단어가 언급돼 눈길을 끌었다. 구광모 회장은 "L자 형 경기침체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의 위기에 앞으로의 몇 년이 우리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며 "위기 극복을 위해 근본적인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하고 사업 방식과 체질을 철저하게 변화해 나가야겠다"고 말했다.

특히 구광모 회장은 "LG가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근본적이고 새로운 변화를 위해 사장단이 몸소 '주체'가 돼 실행 속도를 한 차원 높여야 한다"며 "제대로, 그리고 빠르게 실행하지 않는다면 미래가 없다는 각오로 변화를 가속화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러한 구광모 회장의 발언은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현실을 다시 한번 강한 어조로 강조하며 내부적으로 전투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LG그룹 및 계열사들은 거침없는 행보가 보이며 '예전과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광모 회장이 사장단 회의를 통해 '독한'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LG그룹은 다른 경쟁 기업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을 넘어 소송전도 불사하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영 스타일은 화학·전자·통신 등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상대가 싸움을 걸어오면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향해 선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LG그룹의 움직임을 놓고 'LG가 독해졌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기술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권영수 부회장 등 LG그룹 핵심 경영진이 완강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이 문제를 놓고 지난 16일 신학철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회동했지만, 견해차만 확인했다.

LG전자는 삼성전자의 간판 제품인 QLED 8K TV를 겨냥했다. "QLED 8K TV는 화질이 떨어져 사실상 4K TV에 불과하다"고 혹평을 한 데 이어 삼성 TV를 저격하는 광고도 내보냈다. 기술적으로 앞섰다고 자부했던 OLED TV가 점유율 면에서 QLED TV에 밀리자 분위기 반전을 위해 강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지난 19일 삼성전자 QLED TV 광고를 '허위·과장'이라고 주장하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이외에도 LG유플러스는 지난 7월 SK텔레콤과 KT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했다. 두 회사가 불법 보조금을 통해 5G 시장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6월에는 LG생활건강이 이례적으로 온라인 유통 업계 1위 쿠팡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신고했다. 당시 LG생활건강은 "대규모 유통 사업자인 쿠팡이 상품 반입 금지, 경제적 이익 제공 요구, 배타적 거래 강요 금지 등 대규모 유통업법 위반을 일삼았다"며 "쿠팡은 이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주문을 취소하고 거래를 종결하는 등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사장단 워크숍에 참석해 권영수 ㈜LG 부회장(왼쪽), 조준호 LG인화원 사장 등 최고경영진과 대화하며 이동하고 있다. /LG그룹 제공

◆ LG 사장단, 고객 가치 창출 위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논의

이날 사장단 회의는 금융위기 이후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수요 위축과 보호무역주의에 의한 시장 감소 등 구조적 문제로 경기침체의 장기화가 예상된다는 우려로 시작됐다. 이에 대해 LG그룹 사장단은 앞으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경영 환경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구광모 회장과 LG그룹 사장단은 불확실한 경영 환경을 단순히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사업 모델, 사업 방식 등 근본적인 혁신을 통해 차별화된 고객 가치 창출 역량을 확보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또 이를 위해 디지털 시대의 고객과 기술 변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소통 방식과 일하는 방식 등을 변화해 궁극적으로 제품·서비스의 가치를 혁신하기 위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속도를 내기로 방침을 세웠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디지털 기반으로 기업의 전략, 조직, 프로세스, 비즈니스 모델 등 전반을 변화하는 경영 전략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물 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솔루션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플랫폼으로 구축·활용해 기존 전통적인 운영 방식과 서비스 등을 혁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구광모 회장과 LG그룹 사장단은 AI, 빅데이터 역량을 강화해 고객 중심 가치를 혁신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스마트팩토리 적용, 연구개발(R&D) 효율성 개선을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 확대, 디지털 마케팅 강화 등 사업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공유했다.

고객 가치 창출 방안에 대한 논의를 마친 LG그룹 사장단은 각사가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이어 이를 가속화하기 위한 전략 방향을 공유했다.

구체적으로 △AI를 활용해 질환 관련 유전자 정보 및 의학 논문 등을 분석하고 시뮬레이션해 신약 후보군 발굴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 R&D 전략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맞춤형 상품∙콘텐츠를 추천하는 LG유플러스 마케팅 사례 등 R&D·상품기획, 마케팅·영업, 운영·지원 분야 사례가 소개됐다.

구광모 회장은 회의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더 나은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수단이자 우리의 경쟁력을 한 차원 끌어올리기 위해 꼭 필요한 변화 중 하나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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